창조의 시작은 파괴다.

006 조각난 슬픔에서 일렁이는 파도

by 호야 H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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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슬픔에서 일렁이는 파도


역사는 얇은 얼음 위에 쓰여있다는 말이 있다. 짐짓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역사가 얼마나 연약했는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객관적인 사실 또한 다수가 동의한 주관에 불과하며, 그에 대비되는 동조하지 않은 역사가 있음을 시사한다. 작은 사회인 가족 안에서도 서로 다른 역사가 공존하는데, 수천만 명이 몸을 부대끼는 국가와 수십 억 명이 이루는 세계의 역사에는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을지 떠올려봐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잊히고 사라졌는지, 나의 역사는 이 거시적 역사와 함께 흘러가고 있는지, 그러한 질문에서부터 다시금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녀가 지상으로 잠시 나왔을 때 느꼈던 자유함도 잠시, 쉬려고 내려온 물가에는 신탁의 간부회에서 발송된 편지에 병에 담겨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병 안에 담긴 편지에는 또 다른 심연으로의 파견 지령을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미 심연에서 겪었던 감각의 상흔은 곳곳에 남아 욱신거렸다. 내면에 쏟구치는 감정이 조각나 슬픔과 분노가 일렁였지만, 고민할 시간은 단 삼일뿐이었다. 그 안에 모든 면을 고려하고 판단해야 했다. 그것은 다시금 타인 혹은 자신에 대한 질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처럼 다가왔다. 또한, 심연에는 작은 바다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들과 함께 시간으로 보내고, 교육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 심연 안에 살고 있던 가족들은 이에 반대했지만, 지난번에 겪었던 심연과는 다르기를 바라는 막연한 몽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새롭게 도착한 심연에는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이 있었다. 먼저는 심연의 수신자와의 연결고리가 있던 바닷가재였다. 바닷가재는 소녀에게 남겨진 어떠한 표시를 무엇보다 무엇보다 선명하고 뚜렷하게 직시할 수 있었다. 프랑스어로 ‘표시’라는 의미를 가진 ‘리마르크 La Marque’는 범죄자의 정체성을 숨길 수 없도록 낙인을 찍는 범죄자 식별 도구였다. 당시 낙인 관습이 폐지되자 출소자들의 신원이 불확실해졌다. ​이로 인해 타인의 정체성은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었으며, 시스템 안에 견디지 못하고 나온 소녀 또한, 신원 확인 과정을 통해 수수께끼로서 풀어나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바닷가재는 또한 심연에 오래도록 몸을 담고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주변에 있는 수신자들에게 낙인이 남아 외톨이와 다름이 없었다.


또 다른 존재는 소녀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해파리였다. 해파리가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과 지내지 못하는 순간에 소녀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었던 존재 었다. 그녀가 있다는 사실에 심연에 들어와 있는 상황을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앞으로 "더 나아질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갈등과 투쟁의 자리는 사라지고, 구성원들을 향한 혐오만이 가득 차게 된다. 소녀는 이미 앞서 심연에서 겪었던 일들로 인해 유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을 고려해 줄 것을 신탁의 간부와의 계약에서 언급해 두었다. 그로 인해 상사와 해파리가 보다 많은 양의 유영을 해야 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바다 생물과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타자가 스스로에게 하여금 무해한가 혹은 유해한가라는 이분법적 기준을 통해서 판단하며, 미스터리는 그러한 경계와 선을 넘어서는 유해함을 통해서 탄생하게 된다.


바닷가재와 해파리는 소녀의 유영하지 못함을 유해함으로 분류했으며, 설상가상 소녀의 안락한 품을 내어주던 어른들조차 하나둘씩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소식이 연거푸 들려왔다. 신탁의 간부와 수신자들 또한 상황을 헤아려주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단지, 한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된 심연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단숨에 흩어져 사라지는 듯했다. 소녀의 마음속에는 하루빨리 심연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슬픔만이 원동력이 되었다. 이 불꽃 안에서 달구어지는 고통은 지독한 상처와 갈등 틈새에서 열기를 냈다. 그들은 고상한 신탁의 언어를 빌려 말했지만, 소녀를 유해함과 무해함의 경계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문이 들었다.


무쇠는 스스로 구부러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고도의 불에 달구어짐으로써 유연해지고 형태가 변할 수 있는 신비를 마주하게 된다. 이를 마주할 수 있는 신비의 역설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가장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모여있는 심연이라고 설명한다. 그 안에서 오히려 그 안에 배재되어 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것인가, 깊고 쓸쓸한 소외를 다시금 끊임없이 타자에게 투영시키는 것. 그들로 인해서 아프고, 가슴이 새까맣게 달구어지는 것만 같았다. 심연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작은 바다의 생명들을 만나기 위함인데, 날카로운 말들로 인해 도움을 주려는 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했다.


낙인은 찍힌 사람이 아니라 찍는 사람의 잔상에서 비롯된다. 소녀는 극도로 높은 온도에서 달구어진 신체의 고통 속에서 해파리에게 왜 자신에게서 등을 진 것인지 물었다. 해파리는 소녀가 가족들과 화목히 지내는 모습이 자신의 해체된 가족들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미웠다고 말하며 가증한 눈물을 흘렸다. 소녀는 해파리의 아픔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고, 터전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배반의 자취가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합리화에 조금의 안쓰러움도 느껴 않았다. 해파리는 소녀가 있을 때와 타인과 있을 때의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지 오래였으니까. 소녀는 심연에서 완전히 나와 지상을 향해 도란듯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여 바다가재는 집개로 소녀에게 생채기를 내며 끌어내리려고 하고, 해파리는 자신의 독을 마구 품어냈다.


용서는 내면 안에 침투한 형상을 어찌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인해 내면에 쌓인 찌꺼기를 심연의 흐름으로 흘려보내는 행위다. 그러나 소녀는 그것이 마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칼들로 내면 안의 곪은 살점을 하나씩 도려내어 떼어두는 것 같았다. 영원히 그 과업을 완수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떠한 사람이나 해로운 병균이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는 무균실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내면에 쌓인 감정을 전부 바닥까지 꺼내어두어야 끝을 맺을 수 있기에 내면 속 고인 탁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썩어 들어가지 않도록, 깊은 수문을 열어 심연의 물결로 흘러가도록 내어둘 뿐이었다. 그 오묘하고 혼란스러운 경계 속에서 밀려오는 진폭이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잔뜩 몸을 웅크렸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고유한 형태로 자아로서 수없이 벼려내가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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