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사니아스 #5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by 나이트 아울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 혹시 근래 많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연극을 보셨나요?


소크라테스 : 음? 그런 작품이 있었나? 내 기억 속의 마지막 연극은 딱 자네만 한 나이 때 봤을 테니 벌써 몇십 년 전이구만. 자네는 그 작품을 보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저는 방금 보고 나오는 길인데 한 어부가 거친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펼쳐지는 사건과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예술을 받아들일만한 소양이 부족해서 작품의 의미를 전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여운을 남긴 작품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 : 자네가 지금처럼 술을 멀리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까이한다면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은 언제든 피어날 것이라네. 그러니 초조해하지 말게나. 그나저나 그 작품이 자네에게 일말의 여운을 주었다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랬는지 알려줄 수 있나?


파우사니아스 : 작품 속 주인공인 노인은 어부 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럼 하나씩 짚어보자고. 자네가 감동을 느낀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저는 이제까지 제가 많은 실패, 다시 말하면 패배를 겪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변호사를 지망했지만 번번이 시험에서 탈락하였고 그다음에는 무역업에 도전했지만 그 역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시간을 보내다가 남들은 장군을 할만한 나이에 도시의 일개 초소를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저는 제 인생이 패배로 점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 말을 들으니 제 인생이 조금 달리 보여서 감동을 느낀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 자네의 말을 들으니 자네의 감동은 모두 의미를 결과에서 찾으려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는구먼.


파우사니아스 : 그렇게 말씀하시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결과와 의미를 연결 지어서 생각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소크라테스 : 나는 저 연극을 보지 않았으니 노인의 대사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지는 알 수 없겠지. 하지만 자네의 삶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네의 감상을 들어볼 때 자네는 어떤 지점을 설정해 놓고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패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맞습니다. 저랑 같은 시도를 한 누군가는 그 지점에 도달했는데 저는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도 패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크라테스 : 분명 자네가 걸어왔던 길에서 누군가는 원하는 곳에 도달하고 자네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떤 상인이 돈을 벌기 위해 페르시아에서 융단을 수입해서 아테네에 팔려고 배를 빌려서 사 오는 도중에 풍랑으로 배가 침몰했다면 그 상인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니 패배한 것인가?


파우사니아스 :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패배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럼 다른 경우를 보자고. 마찬가지고 또 다른 상인이 돈을 벌기 위해 페르시아에서 융단을 수입해서 아테네에 팔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융단 대금으로 써야 할 돈을 노름으로 모두 날려서 돈을 벌지 못했다네. 이 경우도 자네의 기준에 따르면 패배한 것으로 볼 수 있겠지? 돈을 벌지 못했으니 말이네.


파우사니아스 :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사례와 달리 후자의 사례는 불가항력이 아닌 자신의 어리석음에 의한 패배라는 점이 다르긴 합니다.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이런 간단한 두 가지 사례처럼 나눌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인생은 간단하지 않음을 자네는 잠시 잊고 있는 듯싶구먼. 분명 후자의 사례는 좀 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름에 빠진 자들이 자제력을 잃고 돈을 모두 날리게 되는 것은 노름이라는 마물이 가진 거역할 수 없는 힘 때문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같은 노름의 마력을 인정한다면 그런 사람들도 풍랑으로 배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저 불운했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파우사니아스 : 확실히 노름이 가진 마력은 신들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위에서 언급한 두 사례 모두 패배하지 않았다고 보시는 건가요?


소크라테스 : 그 질문에 대해서는 패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나는 패배라는 말은 결코 결과에 달려있지 않다고 본다네. 두명의 팡크라티온 선수가 최선을 다해 싸웠고 그 결과 한 명이 쓰러진다면 심판으로써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의해 승패를 가려야겠지. 그러나 패배했다고 판정받은 선수가 링 밖에서도 패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네. 오히려 정말 힘든 사투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불변의 사실은 신들도 바꿀 수 없는 성취라는 점에서 인생의 승리를 쌓아 올렸다고 볼 수 도 있지.


파우사니아스 : 그럼 선생님은 승리와 패배는 결과와 무관하게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나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소크라테스 : 바로 그렇다네. 자네의 인생에서 변호사가 되지 못한 일, 무역업으로 성공하지 못한 일 모두 목표한 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가 아는 자네라면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설령 목표한 바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그것은 풍랑을 만났거나 신들도 극복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다른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지. 만약 그런 외부의 힘 없이 단순히 자네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도전을 한 자네의 결단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음은 물론 도덕적을 비난받을 일도 아니라네. 그럼에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혀놓고 결과라는 길이에 맞지 않으면 잘라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면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네. 그런 생각은 이윽고 본인을 좀먹고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마음의 지옥에 빠트릴 테니까.


파우사니아스 : 제 부족한 인생을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파괴되었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소크라테스 : 나는 파괴되었다는 말은 인간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난 그 자체라고 생각하네. 인간은 덧없이 짧은 인생을 살지만 그 과정 속에서 무수히 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는다네. 물론 그 시련 중에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것도 포함될 것이고. 하지만 그런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과 신들에게 정직하고 바른 뜻을 세우며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해 나가는 삶의 태도를 가졌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 다고 본다네.

어차피 우리의 인생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는 도저히 인간의 지혜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물망 같은 인과의 연결에서 잠깐 명암이 갈릴뿐이까.


파우사니아스 : 저처럼 연극을 다 본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의 본질을 단 한마디의 말로 이해하시는 선생님의 혜안에 감탄할 뿐입니다.


소크라테스 : 그런 말 하지 말게. 본디 예술은 그 창작자조차도 모든 것을 채워 넣을 수 없는 무한함이 생명인데 어째서 내 한마디가 작품의 본질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단지 자네가 지금처럼 훌륭하게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세상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과거에 매몰되어 허우적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내 나름대로의 조언을 했을 뿐이라네. 다른 사람들은 자네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내 눈에 보이는 파우사니아스라는 사나이는 결고 파괴되지도 패배하지 않았다네. 그런 나의 믿음을 잊지 말게나.











이전 04화파우사니아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