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사니아스 #6
지혜로운 삶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 선생님은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을 목표를 하고 있으십니까?
소크라테스 : 당연하지. 내 삶의 유일한 목표는 내가 사랑하는 지혜를 통해 내 삶의 방향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니까.
파우사니아스 : 그런데 선생님, 만약 선생님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지혜가 절망밖에 주지 않는다면 그래도 지혜를 추구하는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소크라테스 : 오오, 자네의 질문이 무척이나 대담하구먼. 자네는 어째서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는가?
파우사니아스 : 제가 도시를 지키는 일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범죄자와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매일같이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있자면 인간의 선함에 대한 기대나 믿음이 하잘 것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인간이라는 존재가 정녕 그러한 것이 지혜의 추구 끝에 도달한 귀결이라면 그 해답은 저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저는 상상만 해도 절망감에 몸서리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 : 자네는 지혜를 어떤 목표나 지향점, 이를테면 행복이나 만족과 같은 내적 만족 등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보는 듯싶네. 하지만 나에게 지혜는 오로지 내 삶의 태도를 결정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네.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께서 지혜를 삶의 태도를 결정하기 위한 도구로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소크라테스 : 그에 대한 대답은 자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알려주면 되겠구먼. 자네의 말대로 인간이란 전혀 기대할만한 점이 없는 존재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해보자고. 그리고 동시에 지혜의 추구 결과 그 명제가 참임을 입증했다고 가정해보자고. 이 두 가지 가정에 의하면 나는 지혜의 추구 결과 인간이란 기대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겠지?
파우사니아스 : 네 맞습니다. 그게 지혜로운 삶을 추구하는 귀결이겠죠.
소크라테스 : 자, 여기서부터 자네와 내가 갈리는 지점이 생긴다네. 자네가 저런 결론에 도달했을 때 절망감을 느끼는 이유가 지혜로운 삶이 자네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지 못하는 상태, 즉 인간이라는 존재와 함께 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눈앞에 제시했기 때문이겠지. 혹시 이 점에 대해 동의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그렇습니다. 저는 지혜의 추구로 인해 믿음과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그렇다면 자네가 사람들과 함께 살 믿음과 용기를 잃어버린 것은 지혜의 추구 때문이 아니라 자네가 그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네.
파우사니아스 : 제가 그러기로 결정했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저의 절망은 제가 그러기를 원했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뜻인가요?
소크라테스 : 물론 자네가 절망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나는 자네의 내심에는 저런 상황에서 지혜의 힘을 믿고 더 나아가기를 포기하는 마음은 있었으리라 보고 있네. 자, 자네와 같은 사실에 도달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가 어떤지 들어보게나.
인간의 선함에 대한 기대나 타인에 대한 믿음이 하잘 것 없음을 깨달은 나는 그럼 내가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네. 어차피 타인도 나를 속이는 것이 당연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악행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나 역시 그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삶을 사는 것도 선택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악행에는 악행으로 거짓에는 거짓으로 응수하는 삶은 과연 지혜로운 삶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추구하는 선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파우사니아스 : 악행에는 악행으로 거짓에는 거짓으로 응수하는 삶은 지혜롭거나 선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 바로 그렇다네. 그럼 그러한 삶을 선택하지 않고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도 있지.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수많은 풍요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교차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네.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을 깨끗한 물, 언제든 제분소에 가면 살 수 있는 밀가루, 옷이 해졌을 때 즉시 고칠 수 있는 수선집 등등 우리의 일상은 이미 타인과의 관계에서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네.
심지어 우리가 이렇게 도시에 살기 이전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함께 모여서 사냥을 했으니 혼자서 산다는 선택지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자네는 내일부터 이제 이 도시를 떠나 어느 무인도에서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저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질적인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도 혼자라는 것을 견뎌낼 자신이 없기도 하니까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인간에 대해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요소밖에 보이지 않는 인간들과 함께 살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고민해야겠지. 나는 설령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진실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아주 잠깐, 아주 작은 선택이라도 악 대신 선, 배신 대신 믿음, 증오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으로 옳은 삶임을 설파하는 것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네.
설령 그 노력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로 아틀라스 산맥을 무너트리려는 시도처럼 무의미하게 보일지라도 내 생각에 지혜롭고 선한 삶은 의미 있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버티는데서 나오는 것이니까. 설령 그것이 절망밖에 없는 진실에서조차 그런 노력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네.
파우사니아스 : 그럼 선생님은 설령 인간의 본질이 아주 부정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고 신들이 정했다고 하더라고 지금처럼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건가요?
소크라테스 : 바로 그렇다네. 우리는 언제나 바꿀 수 없는 무언가에 눈을 두기보다는 내 눈앞에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네. 판자 조각 하나로 망망대해를 건널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신음하기 보나는 어떻게 하면 판자를 조금이라도 더 떠 있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아무도 없는 사막에 물 한 모금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라도 어떻게 하면 물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그런 절망을 이겨낼 수 있기에 우리가 신들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이지. 전지전능한 신들은 뭐든지 할 수 있도록 태어났기에 그들의 성취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능을 이끌어낸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 말씀이 조금은 저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아 힘이 납니다. 제가 일에 눌려서 지혜를 탐구하는 마음을 버릴 뻔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내일도 조금은 더 힘을 낼 수 있을 듯싶습니다.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우리는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그 말이 결코 혼자가 되라는 뜻은 아니라네. 자네와 나는 완벽한 타인이지만 그런 존재들끼리 모여서 아끼고 사랑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모습이 주는 그 자체의 완벽함과 따뜻함을 잊지 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