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사니아스 #7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에 대하여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 저희 집에는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제가 지혜를 탐구하면서 선생님을 찾아간 적은 많지만 선생님께서 저를 찾아온 일은 거의 없었던 듯싶습니다만.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자네와 나는 우정을 쌓아가는 사이인데 일이 있어야만 찾아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라네. 본디 우정은 이해관계라는 영역에서 한발 떨어질 수 있는 소중하고 희귀한 덕목 중에 하나인데 나는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을 최대한 넓히고 싶지 줄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자네의 근무는 해가 질 때까지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해가 지고 나서 한참 지난 지금 집에 돌아왔는지는 궁금하구먼.
파우사니아스 : 아, 오늘은 초소에 조금 손을 보탤 일이 있어서 그것을 함께 마무리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있으신 줄 알았다면 바로 왔었을 텐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런 말 하지 말게. 나는 기다리는 동안에도 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으니 자네가 미안해할 것은 전혀 없으니까. 오히려 똑같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면서 세상이 더 나아지는데 기여한 자네에게 내가 감사인사를 올리는 게 맞겠지.
파우사니아스 : 말씀은 고맙지만 제가 도운 일들이 세상을 나아지는데 기여했다고 보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일들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 : 오오, 파우사니아스. 우리는 여기서 작은 선행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겠구먼. 자네는 모두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참가했었고 그때 위험에 처한 동료를 구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기억하고 있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클레피오스라는 같은 부대원이 적병의 창에 찔릴 위험에 처하자 제가 먼저 적병을 죽여서 그를 구해준 적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 위험에 처한 동료의 목숨을 구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선행이겠지. 이 주장에 대해서 자네는 동의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동의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럼 자네가 행한 선행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병사 한 명의 목숨을 그 자신에게는 신에게 조차 빼앗기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하지만 불행히도 전쟁터에서는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네. 전쟁이란 본시 전술과 전략이 교차하면서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누가 죽고 사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니까. 자네는 자네가 구했던 클레피오스의 목숨이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비하면 작은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제가 장군이라고 해도 전쟁에서 목표는 승리하는 것이지 병사 개개인의 목숨을 챙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클레피오스의 목숨을 구한 것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큰 선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클레피오스 본인에게는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본인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 더 할나위 없이 큰 선행이겠지만요.
소크라테스 :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네. 하지만 장군이 승리에 집착하면서 병사들의 목숨을 고려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더 나아가서 병사 개개인인 승리를 위해 옆에 있는 동료의 목숨을 챙기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자네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도 장군은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제가 병사라면 그런 장군과 동료와 함께 하고 있다면 탈영으로 처형을 당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함께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럼 우리는 여기서 작은 선행의 의미를 다르게 볼 수 있겠지. 작은 일은 그 일이 가기는 개별 행위의 크기가 목표라는 도달점에 비해 중요성이 작을 뿐 그것이 가지는 의미 자체가 작은 것은 아니라네. 왜냐하면 작은 선행이 모이지 않으면 애초에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이런 이치는 전쟁터에서 밖에서도 마찬가지라네.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사회 전체의 자유가 증대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고, 평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평등이 자리잡기 위해서도 역시 개개인들은 차별적인 언행을 삼가여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네. 그러니 자네가 실천한 선행은 자네가 이 도시를 지킨다는 일, 즉 '질서의 유지'라는 목표 속에서는 작아 보이지만 그 목표를 위해 불가피한 일들 중 하나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저 역시 개개인이 목표 속에서 작은 일을 쌓아가지 않으면 큰 목표에도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저 자신이 한 명의 부속품에 불과하고 배의 노처럼, 말의 안장처럼 주어진 역할을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부로 제 자신의 의미를 다시 정립해볼 수 있겠네요.
소크라테스 : 오오, 파우사니아스여. 자네같이 지혜를 사랑하고 실천하려는 사람의 가치는 헤아릴 수가 없다네. 오히려 입으로는 자유, 평화, 정의를 외치면서 본인과 본인 주변의 삶에서는 조금도 실천하지 않으려는 자들이 훨씬 많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까지 하는 이런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지. 그러니 자신을 믿고 조금 더 대견해해도 좋을 듯싶네. 저 넓은 지중해는 물 한 방울씩 모여서 바다가 된 것이고 이 넓은 도시의 질서는 자네 같은 사람들이 행한 작은 선행들이 모여서 유지되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