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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트 아울 Apr 02. 2022

키키 키린의 말

고레에다 히로카즈

얼굴이 없는 치욕을 스스로의 재능이나 인간의 기량, 인생의 빈곤함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도 쓸쓸한 일이다. 목이라도 매다는 수밖에 없다. 목을 매달고 장례는 치르지 말라는 유서라도 남기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는 너무나도 분하므로, 나는 쉰살이 되어서도 '사이비'얼굴밖에 가지지 못한 무정함을 이제껏 종사해온 일 탓으로 돌리려 한다. 이제까지 나를 먹여 살려온 TV일이다.                             

TV는 놀이다. 라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동안은 아직 괜찮다. 이제 슬슬, 나는 말을 더듬는다. 영리한 아이는 어느 틈에 집으로 돌아가 혼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미련을 가득 품고 땅거미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친구를 찾고 있다니 처량한 그림이다.  

죽을 때의 얼굴을 갖고 싶다. 놀이가 어울리는 나이에 힘껏 놀던 때는 좋았지만 이제 제정신으로 놀지 못한다. 이대로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은혜를 입은 TV에 대해 어중간하게 굴어서야 면목이 없을 것이다.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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