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
이단 재판은 유럽의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는 그리스도 교회의 최대 오점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십자군 원정은 귀여울 정도다. 동기가 무엇이든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일은 칭찬할 수 없으나 십자군에 참여한 사람 대다수는 그 땅에서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반대로 이단 재판의 당사자들은 자신은 안전한 장소에 있으면서 많은사람을 차례로 잔혹한 운명으로 몰아넣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이야말로 신을 기쁘게 하는 성스러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부패한 인간은 비인도적이고 무신경하고도 잔혹하게 대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으면서(p. 318)
역사에는 출발점에서 삐끗하는 바람에 이후 인생이 계속 꼬인 사람이 제법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 모두가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리더에 필요한 자질인 역량과 운과 시대의 요구에 응할 재능을 타고나는 건 아니다. 역사는 높은 지위에 오르지 않았다면 편안하게 살았을 텐데, 혹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역량을 발휘했을 텐데, 라고 여겨지는 사람들로 넘친다. 마키아벨리도 역량(비르투)과 운(포르투나)의 중요성을 동시에 놓고있다.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은 마음을 쉽게 바꾼다. 행운을 주었던 사람도다음 순간에는 불행으로 떨어뜨리니까. 그래도 아들을 덮친 불행은 아버지인 프리드리히에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게 한 듯하다(p.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