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치료

치과 의자 위에서 느끼던 공포의 실체는 큰 그림자였을 뿐

by 나이트 아울
내가 기억하던 그 극심한 통증이 아니라는 것은 내 기억이 과장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정도 아픔 따위는 아무렇지 않을 만큼 많은 통증이 나를 스쳐갔기 때문이었을까


아주 오래전, 정말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릴 적 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시 마취 주사가 잇몸에 들어오던 느낌은 문자 그대로 생지옥 이었다. 저 세상의 촉감 같은 싸늘함. 그리고 이어지는 윙~소리와 함께 충치 부위를 깎아내던 알 수 없는 고통의 파도. 그 모든 기억이 결합해서 나는 양치질을 잘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십수 년간 치과 치료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은 상태로, 치과 치료의 고통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고통은 다 겪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그 모든 강인함을 나약함으로 바꿔놓는 것처럼, 나의 튼튼한 치아 역시 시간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에 때웠던 어금니의 땜질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치과를 찾았고 그 결과 여기저기 동시에 땜질 및 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가벼운 지갑으로 치과 문을 나서야 한다는 자본주의 사회가 부여하는 형벌을 부여받았다(통증이라고는 없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여하튼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언제나 치과는 그렇다. 자기 입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간은 없을 테니)
다시 누운 치과 의자 위에서 나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정신만 과거로 뛰어넘는 경험을 했다. 그 끔찍한 통증과 이어지는 싸늘한 통증. 그래, 역시 인생은 고통이지. 이런 유치 찬란한 말이 떠오를 정도로 나는 나약한 어린이로 퇴행해 버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치료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아픔은 내가 기억하던 아픔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프다기보다는 조금 불쾌한 촉감이 스쳐가는, 이 통증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 다른 과거의 경험으로 예측되는 그런 통증이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는 내내 아프다는 인식보다는 내 기억의 과장됨 혹은 아픔에 둔감해져 버린 나 자신에 대한 놀라움 충치 사이에 끼워 넣은 상태로 병원을 나섰다. 아, 물론 그럼에도 지갑이 가벼워지는 형벌만큼은 피할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이 정도 아픔 따위는 견적이 나와서 두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견뎌내고, 그럼에도 살아내면서 내일을 보는, 그런 살아있지만 그저 살아만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아 어쩐지 자신이 미워졌다. 하루를 더 살아본들 그 하루는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한번 더 반복할 뿐 새로움이란 없고,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매달리는 그 순간조차, 이 사람 없어도 내 인생은 충분히 잘 살 것이라는 판단은 '사랑'이라는 말의 보이지 않은 그림자처럼 매달려있다. 적어도 어른은, 그런 어른 중에 한 사람인 나는 알고 있다. 어릴 때의 나를 극도로 무섭게 했던 경험이 이제는 오늘 하루 지나가는 일 중에 하나고, 내가 너무 좋아했고 차이고 나서 나를 벤치에 혼자 앉아서 울게 했던 그 사람은 이제 지가다가 마주쳤을 때 알아볼 자신도 없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아픔도, 두려움도, 사랑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나는 진짜 강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일까. 진짜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런 어른이 되어서 어릴 때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내가 사랑을 얻기 위해 구애하는 사람조차 그저 희미해져 가는 일 가운데 하나인 것뿐인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일 년이나 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는 나란 인간은 여전히 몸만 커버린 비(非) 어른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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