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언제인지만 알 수 있다면, 세상엔 후회할 일이 없을 텐데
가끔씩 지하철에 탑승할 때면 내 눈은 승객들의 귀 부분에 머물러 있다. 어떤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는지, 혹은 유선 이어폰을 쓰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음향기기와는 조금의 관련도 없지만 그냥 일종의 비(非) 상업적인 시장조사랄까. 오로지 지난 15년간 블루투스 이어폰만 사용해 온 한 사람으로서 소형음향기기의 변화는 늘 나의 소소한 관심사였고, 그러다 보니니 내 손을 거쳐간 블루투스 음향 기기들도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쳐야 셀 수 있을 만큼은 된다.
처음 나온 블루투스 이어폰은 귀에 걸치는 구조로써 왼쪽과 오른쪽 이어폰이 선으로 연결된, 최근 많이 보이는 골전도 블루투스 이어폰 같은 형태였다. 그때도 블루투스는 끊김이 많고 음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시기상조라는 평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돌이켜 보자면 15년 전을 돌이켜봐도 블루투스 이어폰은 생각보다 덜 끊겼고 음질도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유선 이어폰에 비해 압도적으로 편리했다. 무선 충전이 유선 충전보다 편리한 것에 백배쯤.
그런 블루투스 이어폰이 몇 대쯤 내 손을 거쳐갈 무렵 True Wireless Stereo 이어폰, 통칭 TWS 이어폰이 출시되었다. TWS 이어폰은 그 전의 왼쪽과 오른쪽 이어폰이 분리되어 있었다. 당연히 이어폰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기의 TWS는 좌우 연결이 불안전했고 사용 시간이 짧았다. 그래서 TWS 이어폰이 출시된 이후에도 나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여 이전과 같은 형태의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호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TWS 이어폰은 단점을 개선해 나갔고, 에어팟과 같은 전 지구적인 상징 아이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어서 비교적 최근 많이 보이는 블루투스 이어폰이 '이어클립 이어폰'이다. 귓구멍에 고무로 된 이어 팁이 들어가는 '커널형'과 달리 귓구멍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 '오픈형' 이어폰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최근 자주 보이는 '이어클립 이어폰'은 문자 그대로 귀에 클립을 부착한 것처럼 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당연히 언뜻 보기에는 걷다가 떨어질 것 같고 이어팁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로 새어나가는 소음도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에서 경험했던 두 시기상조의 우려가 헛된 걱정이었던 것처럼 시험 삼아 구입해 본 '이어클립 이어폰'은 상당히 괜찮았다. 아니, 이 정도면 이제 정점을 찍고 내려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자신만의 장점으로 단단하게 시장에 자리 잡을 정도에 도달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시기상조, 참 묘한 말이지 않은가.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그 말. 뭔가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은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서 기다려야 한다는 단 한마디. 사람들에게 망설임을 주면서 동시에 적절하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피할 수 있는 면죄부를 주는 그 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때늦은 후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주변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0년 전에 비트코인을 사지 않은 일을 후회하고 있었던가. 자신의 바로 옆에 미래가 있었음에도 알아보지 못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던가.
손에 쥐고 있는 그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면서도, 그것을 시기상조라는 말로 포장했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 그것도 세 번이나 반복할 뻔했던 그 소심함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나는 그렇게 얼마나 많은 좋은 것들을 안전함이라는 그늘에 숨어서 흘려보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