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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ne Fine Thing

신호등에 묶여있던 누군가의 상의(上衣)

작은 마음 씀씀이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행복해졌다

by 나이트 아울
매일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걸어서 출근하는 생활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계절과 주변 환경의 변화를 많이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음에도 새삼 기온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전까지는 전혀 보지 못한 가게가 생겨난 것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같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거의 같은 형태의 짜증을 견디는 내 삶과는 사뭇 다르다.


언제나처럼 같은 길을 걸어가서 신호등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도중, 문득 신호등 중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무언가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검은색 상의였다.


옷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일은 출근길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술에 취해서 혹은 그냥 가방에 걸치고 가다가 떨어트릴 수도 있고, 화가 나서 웃장을 까서 난리를 피우다가 홧김에 그냥 가버렸을 수도 있을 것일 테니까 하지만 부주의하거나 화가 나서 가지고 있던 웃옷을 신호등에 묶어두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신호등 옆에 도착하기 전에 누군가 나보다 먼저 이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을 보고, 옷이 밟히고 나면 옷감이 상하거나 아니면 다시 주인이 옷을 찾더라도 그 옷을 입기는 일에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 옷이 밝히지 않도록 옷을 신호등에 묶어둔 것이 아닐까.


당연히 이건 내 상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그런 마음으로 옷을 신호등에 묶어 놨다고 생각하니 무겁고 그다지 즐겁지 않은 아침 출근길에 작고 따스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마음이 피어났다. 각박하고 무관심한 것이 기본값이고 어쩐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사람을 매시간 마주하는 일상에 이런 마음을 상상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날 하루는 더 좋은 기분으로 퇴근할 수 있었던,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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