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는 화창함이라는 단어를 잔혹하게 뒤집어 볼품없이 늘려 놓은 것만 같았고, 흐릿함 속에 잠기기 직전의 리버데일을 한층 더 짙은 타르빛 어둠으로 물들였다. 이 도시는 늘 그랬다. 세월의 손길에 문드러진 네온사인 빛이 빗줄기에 굴절되어 사무실 유리창에 마치 누군가 피 섞인 침을 뱉어 놓은 듯한 기괴한 얼룩을 남겼다. 그 너머의 도시는 거대한 검은색 잉크병에 침몰해 가는 먼지처럼, 혹은 거대한 뱀의 식도 안으로 삼켜지는 먹이처럼 서서히 형체를 잃어갔다.
나는 익숙하면서도 낡은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이 의자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자들의 무게를 견뎌야 했을까. 내가 이 지긋지긋한 구덩이에 자리 잡은 것이 3년 전이었고, 이 의자는 불쾌한 웃음을 지으며 곰팡이 핀 벽을 어떻게든 135kg짜리 비계덩이로 감추려던 부동산 중개인의 비릿한 땀 냄새가 시작되는 그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괴로움을 겪어야만 했던 의자 ‘형님’에게 오늘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왼쪽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통증은 출혈이라는 현상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상처 틈새로 존재감을 내보이며 터져 나오는 선혈은 중력을 거스를 용기 따위는 없다는 듯, 의자의 갈라진 틈새와 내 다리를 질척하게 적시고 있었다. 가죽 코트의 짙은 색감 덕분에 파열된 상처가 도드라져 보이진 않았지만, 닳아버린 청바지는 이미 청색이 아니라 도축장의 바닥처럼 붉은색으로 기괴하게 리폼되어 있었다. 아직 식지 않은 피에서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 미지근한 감촉은, 이 고통이 환각이 아닌 선명한 종말임을 일깨워주었다. 약 20분 전, 내 몸 안으로 파고든 납과 구리로 만들어진 총알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내 피와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내일 비 그치면 바지나 한벌 사야겠네.. 이번엔 새 걸로..”
어울리지 않는 희망을 담아 낮게 읊조린 목소리가 먼지 쌓인 사무실 안에 죽음의 전조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책상 위에는 아까의 지옥도를 빠져나오게 도와준 1911 시리즈 70 권총 한 자루가 매캐한 화약 냄새를 풍기며 놓여 있었고, 그 옆엔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멋대로 떠들기 좋아하는 자들이 찍어낸 값싼 신문 뭉치가 습기를 피하지 못한 채로 눅눅하게 절여지고 있었다.
마지막 탄창을 비우기 전 간신히 이곳까지 기어 들어왔지만, 창밖의 풍경을 응시할수록 생존에 대한 감각은 진물처럼 흐릿해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처박힌 이유는 저 바깥의 심연보다 더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사라지는 감각이 느껴 쳤다. 나는 그 순간 분명 단순한 의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다고 착각했다. 그게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