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한 칸씩 밟고 오를 때마다, 이 낡고 음습한 건물에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곰팡내 섞인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고, 눅눅한 계단 난간은 내 손에 축축한 공포를 남겼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저앉아 고민할 시간 같은 건 사치였다. 이미 2층의 끝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3층으로 통하는 마지막 계단참에서 잠시 멈춰 섰다. 오른쪽으로 돌면 곧장 내 사무실 입구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둠 속의 기척을 더듬어 보았지만, 새벽을 넘어 이 고요한 복도에 전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그저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검은 중절모를 벗어 왼손에 쥐고, 모퉁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오른쪽 복도를 아주 조심스럽게 훔쳐보았다. 희미한 비상등 불빛 아래 드러난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나를 노리는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사무실 입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낡아 빠진 나무 복도가 낼 삐걱거리는 소리가 불안을 가중시켰지만, 이 길을 지나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어떤 소리가 나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든,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사무실 문 앞에 서서 다시 한번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만약 침입자가 나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까짓 얇은 나무 문 따위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내가 손잡이를 돌리고 문이 살짝 열리는 순간, 문 안쪽 어딘가에서 슬러그탄이 장전된 산탄총이 불을 뿜을 것이다. 형사 시절, 방탄조끼를 입은 채 슬러그탄에 맞고 쓰러졌던 후배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놈은 그 느낌을 "누군가 거대한 오함마로 배를 후려친 쳐서 온몸의 뼈가 가루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펄펄 끓는 20대 청년도 나가떨어지는 충격인데, 40살을 넘긴 내가 맞는다면 아마 즉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을 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나는 오른손으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수천 번도 더 반복했던 익숙한 감각으로 열쇠 구멍에 꽂고 돌렸다.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안쪽으로 밀어냈다.
끼익-
문이 열리는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터져 나올 총성과 충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를 반겨준 것은 시끄러운 굉음도, 배를 뚫고 들어오는 뜨거운 납덩어리도 아니었다. 그저 썰렁한 사무실 내부의 적막뿐이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천천히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내 책상을 바라보았다. 이 좁아터진 사무실 안에 사람이 숨을 만한 공간은 없다. 공용 화장실은 복도 중앙에 있고, 이곳은 오직 눈에 보이는 이 공간이 전부다. 유일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은 내 책상 뒤편뿐. 하지만 창밖에서 비스듬히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은 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고, 책상 뒤에 누군가 숨어 있다면 그자의 그림자 역시 같은 방향으로 드리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 안에는 오직 나 하나의 그림자만이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완전한 시간 싸움이다. 나는 즉시 책상으로 달려가 맨 아래 서랍을 열고 이중 바닥을 확인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내가 숨겨둔 현금 뭉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이 돈마저 없으면 나는 이 잔혹한 도시에서 굶주린 유기견 신세가 되고 만다. 나에겐 하룻밤 몸을 의탁할 친구도,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 줄 동료도 없다. 이 더러운 돈뭉치들은 지금 나에게 장발장의 은촛대보다 더 값진 생명줄이다.
아니, 장발장은 그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은촛대를 팔지 않았고 죽음의 직전에 딸과 사위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지만, 나는 이 돈을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 쥐어주면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칠 뿐이다. 나의 유산은 이 세상 어디에도 남지 않으리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돈은 나에게 은촛대보다 더 값진 금이고 다이아몬드였다. 나는 이 소중한 것들을 코트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쑤셔 넣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조차 감상에 빠져드는 나 자신이 역겨웠다. 자조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우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내 손에는 어느새 오래된 나무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 콜트 1911 시리즈 70. 자신의 자식이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할 운명으로 세상을 떠날 위기에 처할 것임을 예상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아버지는 이 묵직한 쇠붙이를 내게 건네주셨다. 10년이 넘는 형사 생활 동안 단 한 번의 기능 고장도 없었던, 맞추기만 한다면 누구든 쓰러뜨릴 수 있었던 나의 가장 충실한, 그리고 유일한 친구였다.
상자에서 총을 꺼내 왼손으로 그 차가운 촉감을 느껴보았다. 경찰 시적의 습관 때문인지 매주 한 번씩 정성스럽게 기름칠을 해주고 보관했지만, 실제로 방아쇠를 당겨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적어도 지난 5년 동안은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손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타고 뇌리를 스쳤다. 탄창에는 7발이 장전되어 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발이다. 단 한 발이면 지금 겪는 이 지독한 두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있다. 단 한 번의 손가락 움직임이 내 남은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구원과 자유. 그런 달콤한 환상은 언제나 많은 사람을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었다. 형사 시절, 참혹한 시체들이 나뒹구는 현장에서는 언제나 그런 알 수 없는 비릿한 달콤함이 감돌았다. 물론 달콤하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뇌 조각과 말라붙은 피가 뒤섞여 악취를 풍기는 현장에서, 그 죽음의 실체 앞에서,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고, 더 이어가는 것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절망적인 믿음.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은 죽음이라는 확신. 그 두 가지의 결합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지금은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아주 작은 결심뿐이다.
철컥-
슬라이드를 당겨 탄환 한 발을 약실로 밀어 넣었다. 이 익숙하고 확실한 기계음은 지금 이 총을 내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면 반드시 죽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이걸로 모든 것이 끝난다. 이루지 못한 꿈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도, 앞으로 더 나은 삶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저주받은 운명에서도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과연 이 구차한 삶을 더 이어 나갈 이유가 나에게 남아있을까.
차가운 총구가 입천장을 건드리는 순간, 창밖의 빗줄기가 더 거세게 창문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