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0 : 어둠 속으로 다시 한번

by 나이트 아울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수천 명의 과거가 뒤섞인 듯한 퀴퀴한 먼지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가지들 속에서 나는 나를 지워줄 새로운 껍데기를 찾기 시작했다. 이 지독한 냄새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얼굴을 깊게 가려줄 검은색 중절모와, 체형을 뭉뚱그려줄 투박한 코트. 단돈 몇 달러면 충분했다. 지갑 속의 푼돈 몇 장으로 흔해 빠진 중년 사내라는 새로운 유령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이 냉혹한 시카고가 내게 베푸는 몇 안 되는 친절이었다.


가게를 나오자 지독한 먼지 냄새는 이내 차가운 비 냄새에 씻겨 내려갔다. 나는 다시 아까의 카페로 돌아와 블랙커피를 주문했다. 가죽 재킷 대신 낡은 코트를 걸치고 중절모를 깊게 눌러쓴 나를, 웨이트리스는 아까와 같은 사람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위장은 완벽했다.


사람들은 ‘잠입’에 대해 두 가지 치명적인 오해를 한다. 첫째는 새벽 3시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 둘째는 비상계단이 정문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를 기다리는 감시자 역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해 있기 마련이다. 적이 예측하고 있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의 말로가 어떨까? 나는 형사 시절 그런 뻔한 결론도 이해지 못한 채로 도망 다니던 수배자들을 수없이 잡아들였다. 그들은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예측되는 순간 최악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조차 의심하지 못했다. 그렇게 믿는 것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은 편안함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감옥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니까.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날, 시카고의 거리에서 우산을 쓰고 코트 깃을 세운 채 중절모를 쓴 남자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차림이 아닌 사람을 찾는 게 훨씬 빠를 정도니까. 그래서 내가 노리는 시간은 새벽이 끝나고 아침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밤새 감시를 이어오며 "오늘도 허탕이군"이라며 긴장이 풀린 감시자가 가장 피로를 느끼는 시간. 그들은 수백 명이나 지나쳤을 흔한 우산과 코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카페가 문을 닫기 직전까지 버티다 밖으로 나왔다. 그 시간까지 내가 확인한 감시자는 총 두 명, 12시간씩 맞교대를 하는 아마추어들이었다. 이런 지독한 잠복에 단 두 명을 배치하다니, 의뢰인이 인색하거나 이 바닥 생리를 모르는 초보임이 분명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몇 블록 떨어진 조용한 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취객도 없는 적막한 바에서 나는 브랜디 한 잔을 주문하고 새벽을 기다렸다. 잠시 눈을 붙일 수도 있었지만, 마음을 풀어놓는 것은 위험했다. 차라리 피곤하더라도 따뜻한 공간에서 브랜디의 열기를 느끼며 긴장을 유지하는 편이 나았다.


동이 트기 직전, 나는 술값을 계산하면서 카메라가 든 가방을 바 주인에게 맡겼다. "술때문에 잃어버릴 것 같으니 내일 찾으러 오겠다"는 핑계를 대자, 그는 무심히 가방을 카운터 안으로 치워두었다. 이제 내 손에는 오직 우산 하나뿐이었다. 아주 평범한 중년 남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펼쳐들고 천천히 내 사무실로 향했다. 불안감은 여전히 심장 언저리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 사이에 감시자가 늘었을지, 혹은 사무실 안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내 사무실은 어느 건물에서도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었기에, 불확실성은 더 짙게 다가왔다.


보통 사람들은 정보가 불확실할 때 결정을 미루거나 도망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선택으로 '행복의 나라'에 도달한 자는 없다. 내가 봐온 생존자들은 모두 그 불확실성을 몸으로 이겨내며 위험을 기꺼이 짊어지는 자들이었다. 그 위험의 다리를 건너면서 시선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게 사무실 건너편의 크라이슬러로 슬쩍 눈을 돌렸다. 그 차는 여전히 시동이 걸린 채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박힌 비석 같았다.


나는 건물 정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기 전 내부를 살폈다. 홀은 고요했다. 나는 여느 중년 남자처럼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바깥의 폭우는 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의 물자국으로만 그 존재를 드러낼 뿐이었다. 작년부터 고장 난 채 방치된 전등 때문인지, 홀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내 사무실은 3층 맨 오른쪽 구석. 엘리베이터도 없는 이 낡은 건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묵묵히 계단을 오르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익숙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내 남은 생을 건 투신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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