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2 : 오해와 구원의 손길

by 나이트 아울

그 순간, 복도 끝의 어둠 속에서 낯선 인기척이 뱀처럼 스며 나왔다. 뚜벅. 뚜벅. 누군가의 발소리가 이 사무실을 향해, 그러니까 정확히는 죽음의 문턱에 선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입천장에 맞닿아 있던 차가운 총구를 반사적으로 빼내 책상 뒤로 몸을 던졌다. 순간, 뇌리를 휘감고 있던 죽음의 유혹이 아드레날린의 거친 파도에 휩쓸려 나갔다. 마음속 깊은 심연, 웅크리고 있던 생존 본능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죽음을 동경하며 눈을 돌리던 나약한 남자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감각만이 혈관을 타고 전율처럼 흘렀다.


발소리는 점점 더 크게 고막을 때렸다. 분명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발걸음은 상대가 한 명임을 알려주었지만, 그자가 누구인지, 나를 노리는 놈들의 사냥개인지, 아니면 그저 운 없는 불청객인지 알 수 없었다.


만약 감시자가 내가 건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뒤따라온 것이라면, 이 방에 발을 들인 두 명 중 단 한 명만이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명이 나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사무실은 3층,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도 아니었고 비상계단도 없는 이 막다른 공간은 냉혹한 현실을 일깨웠다. 지금, 여기서 맞서야만 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의 발소리에 총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경찰 아카데미에 있을 당시 만났던 교관이 사격 훈련 때가 되면 "총을 잡았을 때 손에 너무 힘을 주면 어깨가 굳는다, 그러면 조준하는 게 느려지고 죽고 나서 후회한다!"라고 귀청이 찢어질 듯 외쳤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10초 뒤에 목숨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어깨에 힘을 빼는 일은, 사격장에서 과녁을 맞히는 것보다 백배는 더 어려웠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일이 더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처럼.


발소리가 내 사무실 앞에서 뚝 멈췄다. 5분 전, 내가 이 방에 들어설 때는 안쪽에서 날아올 총알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였다. 내가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저 낡은 나무 문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게 납탄을 선물할 것이다. 이제 5초 남았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철커덕-

금속이 맞물리는 차가운 파열음이 고요를 찢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맞은편, 기억 속에 세무사 사무실로 남아있는 곳의 자물쇠가 해제되는 소리였다. 이어서 문이 열렸다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복도는 다시금 숨 막히는 침묵의 그림자에 잠겼다. 그제야 온몸을 옭아매고 있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졌다.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인지 머리가 핑 돌고 현기증이 밀려왔다. 나는 책상 맨 아래 서랍을 거칠게 열어 보드카 병을 꺼내 입에 들이부었다. 독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왔지만, 목이 타들어 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내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아-

술기운이 돌자 이성이 돌아왔다. 아까 그 발소리는 그저 옆방 세무사 사무실 직원의 출근 소리였을 뿐이다. 나는 불과 몇십 초 전, 총구를 입에 물고 세상을 등지려 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죽음에서 끌어올린 것은 진실이 아닌 알량한 '오해'였다. 그리고 그 오해가 풀리자, 죽고 싶다는 간절했던 욕망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허무하게 증발해 버렸다.


그날, 사진을 찍기 위해 이 사무실을 나선 순간부터 나는 수없이 흔들렸다.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결심을 굳히며 여기까지 왔건만, 또다시 죽음 앞에서 나약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부끄러움보다는,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으려 했던 나 자신에 대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가슴을 때렸다.


나는 늙고 나약해졌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젊음과 패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작은 인기척에도 죽음을 결심하는 초라한 중년 남자가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춥고 곰팡내 나는 사무실이 정말 내 무덤이 될 뻔했다.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목 놓아 울고 싶었지만, 비참한 심정은 눈물로 바뀌지 않았다. 아니, 이런 한심한 작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 순간, 적막을 깨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틱, 틱, 틱.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 방 안에서 나를 제외하고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손목시계, 그 작은 기계장치는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들었던 소리는 바로 내 손목 위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소리였다. 갑자기 손목시계의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려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뇌는 분명 나에게 환청을 통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가고 있다고, 늙은이


지금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가고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이었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책상 위 나무 상자에 있던 여분 탄창을 꺼내 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서랍 속에 보관해 두었던 홀스터를 꺼내 권총을 넣고 허리춤 뒤에 감췄다. 넉넉한 품의 코트는 그 안에 감춰진 흉기를 완벽하게 숨겨줄 것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혹시나 했지만, 복도 밖에 나를 기다리는 그림자는 없었다. 창문 너머로 본 감시자의 크라이슬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감시자가 눈을 부라리고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것을 확인할 유일한 방법은, 내가 직접 이 건물을 걸어 나가는 것뿐이다.


두려움과 어둠을 뚫고 올라왔던 그 계단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아침 햇살 한 줄기가 계단의 난간을 비추고 있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온 그 따뜻하고 가느다란 빛줄기가 지금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 고마움이 왜인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모든 좋은 것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1층 복도를 지나 출입문을 열자마자 우산을 펼쳐 들었다. 쏟아지는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 등 뒤로, 크라이슬러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 쫓아오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12시간의 지루한 감시에 지친 놈의 눈에는, 나 역시 비 오는 날 출근하는 흔해 빠진 중년 남자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까 계단에 비추던 따스한 햇살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비는 더욱 거세게 쏟아졌다. 마치 이 앞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려는 것처럼, 하늘은 사납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흔들리고, 떨고, 숨죽이면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고, 살아있다는 이 비릿한 현실을 견뎌내기로 나는 다시 한번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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