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2016)
'마술사'라는 이색적인 직업으로 이름을 알렸고 지금도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 이은결 씨는 어떤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들이 유독 마술을 감상할 때 공연 관람보다 트릭을 간파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애초에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 속임수를 전제하고 마주하는 마술 공연에서 팔짱 끼고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어디 한번 속여봐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이상해 보이지만, 공연하는 당사자에게는 그런 관객의 태도가 이상한 것을 넘어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계벽 감독의 2016년 작 '럭키'는 500만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성공적인 첫 번째 주연 작품'을 뛰어넘는 성취를 이뤄냈습니다. 그의 연기력이나 인지도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예고편에서 보인 몇몇 코미디 장면들만 봤을 때는 마술공연 이상으로 팔짱을 끼고 냉혹한 시선으로 남겨진 한줄평과 댓글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으니까요.
하지만 럭키를 감상하고 나면 이 작품이 이뤄낸 성취는 역설적으로 영화가 유해진 씨 한 명에게 의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해진 씨와 함께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이준 씨 역시 배역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진지함을 오가면서 자기 역할은 충실히 해냈고, 조윤희 씨나 임지연 씨 같은 경우도 기계적으로 쓰였다는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작품 내에서 해야 할 역할은 다 해냈습니다. 이런 다른 배우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럭키는 유해진 씨의 1인 개그물 이상에 그치지 않았고, 더 크게 보면 이야기에 공백이 생기는 현상도 막아 주었습니다. 아무리 유해진 씨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혼자서 두 시간 동안 웃기기만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등장하는 주요 배역들이 모두 자기 역할을 다 해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같이 연기하는 상대 배우의 리액션을 잘 이끌어 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간에 영화 쪽에서는 연기면에서 아쉬움이 컸던 조윤희 씨 같은 경우는 유해진 씨와 같이 나올 때는 안정적으로 자신의 연기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이준 씨 역시 임지연 씨와 함께 할 때 보다 유해진 씨와 연기를 펼칠 때 더 인상적인 연기가 나왔고요. 이런 점에서 유해진 씨는 오랜 세월 갈고닦은 연기력을 선보임과 동시에 주연으로 맡은 바 역할도 충분히 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명품 조연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특히 웃음을 주는 쪽으로 인지도를 알린 배우들이 주연으로 참여한 작품에서는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해 다시 조연으로 돌아간 경우는 의외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럭키의 성공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사례의 상당수는 배우의 연기력 부족이 아니라 배우 한 사람이 가진 개인기에만 영화가 기대어 다른 부분들을 소홀히 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역할에 따라 다르게 부담하지만 좋은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거인이라도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송강호 씨나 말론 브란도 같은 대배우들이 영화의 시작과 끝처럼 보여도 결국 영화는 4번 타자 한 명의 활약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팀처럼 될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