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 Fine Thing

아톰 익스프레스

(D-3)

by 나이트 아울
"어떤 기체들은 원자 두 개가 붙어서 하나의 입자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분자라고 합니다. 같은 부피 안에서 그것이 분자든 원자든 '입자'로 취급되고, 입자 수는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중략)

"하지만.. 아름답지 않아.. 너무 복잡해""

"자연은 단순하다고 누가 정했소? 내가 보기에는 현실은 당신 생각만큼 단순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시궁창이지"

<아톰 익스프레스 p.117~118>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작품은 존재 의의에 반드시 '타인에게 전달한다'라는 목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태울 것을 부탁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덕분에 알려진 카프카의 유작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작가 본인이 자기만족을 위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작품조차 그것을 세상에 공개하는 일은 타인에게 자신의 피조물을 선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때문에 모든 작품은 반드시 '가독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관문을 넘지 못한다면 아무리 그 안쪽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담고 있음에도 인간의 식성을 충족하기 위한 냄비 받침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당연히 모든 작품이 와룡강의 대본소 무협지처럼 하루에 100권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만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문호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처럼 등장인물 한 명의 이름이 책 한 줄에 육박한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면 와룡강의 책 보다 '좋다'라고 일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 작품은 작가의 자기만족이라는 욕망 외에는 아무 성취도 이루지 못한 것이니까요.



조진호 작가의 '아톰 익스프레스'는 부제를 "원자의 존재를 추적하는 위대한 모험'이라고 표지에 당당히 밝힌 시점부터 아주 높은 곳에 가독성의 문을 열어 둔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지난 10년간 '원자'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 순간이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된 뉴스밖에 없던 저 같은 사람에게는 원자란 그 크기와 다르게 에베레스트산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아톰 익스프레스가 펼친 가독성의 관문은 결코 높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원시원한 컷들과 소소한 유머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던 소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고, 작품의 중심이 '원자'가 아니라 '원자를 향하는 사람들'에게 맞춰진 덕분에 책 전체는 흥미를 자극할만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책은 점점 팔리지 않고 길고 어려운 글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작가들은 시류에 영합하는 소재로 짧은 내용의 작품을 연달아 내놓는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 반대로 아무도 택할 것 같지 않은 소재를 쉽게 전달할 수 있게 만들려는 고민의 결과물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드물기 때문에 더 가치있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뚝심에 경외감을 표시하고 싶게 만든 조진호 작가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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