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 Fine Thing

사랑의 습관 A 2 Z

(D-2)

by 나이트 아울
둘이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또 쑥스러워서 웃음을 터트려야 하는데, 우리는 순간 말을 잃었다.

어떡하지. 나는 당황했다. 그도 난감해했다. 그 순간, 입술이 내려왔다. 나는 그의 등에 팔을 둘렀다. 좋네,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노을, 길 위, 키스. 할리퀸 로맨스도 울고 갈 정도의 진부함.

무슨 상관이람. 연애가 진부한 것은 사탕이 달콤한 것처럼 영원한 진리인 것을

<사랑의 습관 A 2 Z p.105>




어떤 사람의 일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휴대폰이 아니라 카드 사용 내역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른이 되기 훨씬 전부터 돈을 쓰면서 닦은 길은 그 사람이 가고 싶은 방향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으니까요.


문득 가계부에 기록된 지출 내역을 살펴보니 이번 달 제가 향했던 지향점이 고스란히 적혀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완전판으로 재출간된 책을 충동적으로 구매한 흔적도 있었고, 무사히 사용하던 우산이 고장 나서 3년 만에 새 우산을 구입한 기록도 보이네요. 하지만 대다수는 흐릿하게 보이는 먼지처럼 일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출이었습니다. 돈이 아까워서 매일 아침 9시쯤 이마트 편의점에서 마신 아메리카노가 20번 이상이었고, 집에 돌아오면서 근처 마트에서 비슷한 식자재를 구입한 기록도 원단위까지 정확히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반복되는 지출로 가득한 하루, 한 달, 1년이 쌓여가는 것과 반비례하듯 새로운 것에 투자하는 돈은 점점 줄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무수히 반복됨에도 질리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즐거움처럼 다가옵니다. 그 뻔한 것의 결말이 눈썹 끝을 스치기도 전에 다 본 것 같다는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복하는 순간에 다가오는 따뜻하면서도 몽글몽글한 어떤 감정들. 식상하다고 축약하기엔 도저히 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중독성. 다들 그런 진부한 즐거움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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