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와 그런 사적인 관계를 맺을지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이에요. 모두와 똑같이 그런 관계를 맺어야 할 의무는 없잖아요. 그런 의무가 전제되지 않는데 이걸 차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당하죠. 친목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권리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국가가 규제하거나 금지하겠다? 이런 말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죠.
'인맥'이라는 단어는 혈연, 학연, 지연에 의존하는 것이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단어입니다.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에 언급된 세 가지 개념을 뭉뚱그려 함축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와 선이 닿아 있는 것은 험한 세상에 나만의 전용 다리가 있는 것 같은 안도감과 서로가 서로'만' 돕는다는 연대 의식을 느끼게 해 주니까요. 때문에 세상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비례하듯 누군가와 인연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 반대로 스스로 인연을 만들려고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날 뉴스를 보니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근거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도 안될 것 같은 인간처럼 묘사되는 모습이 빈번하게 보이고 있으니까요. 거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외형이 호모 사피엔스이고 유능하기만 하면 악마와도 일하겠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반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가운데 내 생애 전체에 걸쳐 이룬 노력이 끝나버리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판단은 무척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맥을 만들지 않으면 나 자신의 손해이고 나와 인맥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의 손해 여부는 오롯이 그 사람의 문제니까요.
이선옥 작가의 우먼스플레인은 대담 형식을 통해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여러 이슈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최근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과정의 문제점과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이 실제로 다수의 여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점입니다. 가령 누구도 사적 영역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의무가 없음에도 마치 펜스룰이 공적 영역에서의 배제까지 정당화하는 것처럼 오독하는 사람들이 논의를 흐리고 있다는 비판처럼요.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말은 어른이 되고 짊어진 게 많아질수록 더욱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그런 뼈아픈 후회를 피하기 위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는데, 내 인생에 조금도 관심 없던 사람들이 자기 머릿속에 있던 개념을 근거로 하는 간섭에 수긍했다가 한순간 재가 되어 흩날리게 되면 누구를 원망해야 마음이 편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