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 Fine Thing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

(D-29)

by 나이트 아울


정리해 보자. 만물의 목적은 자기실현이다. 이것은 신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최고의 자기실현은 자기 인식이다. 자기를 아는 것이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를 바깥으로 드러냄으로써 대자화해야 한다. 이 대자화의 과정, 이 외화의 과정이 바로 창조이다. 그러므로 창조는 신이 자신을 알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알 수 있다.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 p.137>




보통의 경우, 미리 생각해두지 않았다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거나 베스트셀러가 쌓여있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손에 쥘 수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는데 선택지로 주어진 책들은 문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까요. 저도 나름 독서를 오랫동안 취미로 해 왔지만 사람마다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다르고, 독해력에도 차이는 있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할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기준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서적은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어떤 이유에서든 한 페이지를 읽는 것 자체가 불편한 경우

둘째, 책 전체를 간략히 살펴봤을 때 인용문구가 전체 분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


조용현 작가의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라는 위의 두 가지 기준을 모두 통과한 몇 안 되는 철학 서적입니다. 여전히 서점에는 두 페이지 이상 읽는 것이 어려운 문체로 쓰인 철학 서적 혹은 내용의 대부분이 유명한 철학자의 저서에서 인용한 것으로 도배되어 있는 책들이 넘쳐나지만, 이 책은 인용은 최소화하면서도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읽기 쉬운 문체로 잘 녹아있으니까요. 또한 부제인 'SF 영화로 보는 철학의 물음들'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매트릭스, 식스센스 등 유명한 영화에서 보았던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면서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점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접근 방법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방향으로 빠지지 않게 함으로써 전달력을 높이고 있고요.


이 세상에는 시험과 같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불편한 것을 억지로 참고 읽어야 할 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본인이 지금과 다른 것을 보고 싶다면 견뎌야 하는 지식의 파도가 있을 뿐이죠. 물론 아주 어려운 책을 끝까지 완독 했을 때 만족감과 지적인 고양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인 현실에서조차 독서는 과정을 생략하면 남는 게 없는 몇 안 되는 분야입니다. 기왕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면 조금이라도 손에 달라붙고, 약간이 알맹이가 잡힐 것 같은 책을 먼저 고르는 게 '과정'에 무게가 있는 독서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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