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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치우는 법

진상 대처법

by 밤새

얼마 전 글에서도 똥 이야기를 한 번 했는데, 똥은 더러운 것, 배설물, (시·후·촉각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 보면 더럽다는 생각이 들고, 냄새는 지독하고, 밟으면 최악이다 - 의 대표적 상징물이므로 오늘 진상과 비유해서 한 번 더 이야기하려 한다.


얼마 전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란 책을 읽었다. 상담원으로 5년간 일하면서 진상 고객과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상처 받고 고군분투한 내용이다. 웬만한 직장에서는 다 갑을 관계가 형성돼 있고, 갑질을 당하는 을 쪽에서 보면 그 갑은 당연히 진상이다. 평등한 관계인 도로에서도 진상을 경험한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층간 소음, 주차 문제 등 어떤 상황 속에서든 나를 괴롭히고, 내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하는 상대방은 일단 진상이다.


아침에 일터를 청소(빗자루질)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일과가 시작되는데, 강아지가 똥을 싸놓은 경우가 종종 있다. 그걸 보면 강아지가 밉기보다 강아지(개새끼) 주인의 이기적인 행동에 짜증이 난다. 더럽긴 하지만 난 그 똥을 즉시 치우지 않는다. 싼 지 얼마 안 된 똥은 수분이 많아 빗자루로 쓸면 빗자루에 똥이 묻는다. 냄새도 나고... 그래서 자연건조(?)될 때까지 2~3일 기다렸다 치운다.


진상이 나의 분노 유발 급소를 건드렸을 때 욱하는 마음에 곧바로 대응하는 것은 똥을 바로 치우는 것처럼 여러 가지 부작용과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 진상이 황당한 주장으로 혈압을 상승시킬 때는 일단 두 가지를 생각하자.


첫째, '나는 과연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진상이었던 적이 없었을까?'하고 마음의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 화를 주체 못 해서 진상이 된 적도 있고, 스스로는 못 느꼈지만 상대방이 나를 진정 진상이라 여겼을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진상도 100% 외계인은 아니라서 1%의 연민을 가지고 바라볼 수도 있다. 진상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똥도 자연 건조의 시간이 필요하듯 진상의 그 이해 못할 분노도 스스로 좀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조건 참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내가 무반응으로 대하면 수 분 안에 마무리될 상황이라면 '그래, 얼마나 평소에 열등감이 심하면 여기 와서 이런 걸로 이기려 할까'하는 너른 아량(?)으로 못 본 체, 못 들은 체해도 된다.


수분 안에 끝날 상황이 아니라 수시간·수일이 걸릴 것 같고, 일이 커질 것 같다면 응대 중간중간에 텀을 주는 것이 좋다. 상대방(진상)의 분노 리듬에 나도 모르게 올라타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자주 그 리듬을 끊어야 한다.


이런 대응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진상이 내가 모를 1차적 분노를 겪고 왔을 가능성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배우자와 심하게 싸웠다든지, 큰 시험이나 면접에 떨어졌다든지, 연인한테 차였다든지... 그러므로 상대방이 폭발하는 짧은 시간 동안 잠시 내버려 둘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진상과 대응할 경우 소모될 나의 에너지(감정, 시간, 체력)를 계산해 봐야 한다. 특히 중요한 프로젝트, 시험, 배움 등 무언가에 집중해 있는 상황이라면 진상과의 다툼으로 그 리듬이 깨질 수 있다. 진상과의 다툼에서 이겼는데 여전히 짜증스럽고 기분이 찜찜하다면 딱히 진상을 물리쳤다고도 할 수 없다. 이미 똥냄새가 내 몸에 배이고, 신발은 똥을 밟은 상태인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웬만하면 화해'할 수 있는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난 것 같다.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가 넘쳐나면서 세상은 갈수록 초개인화 되어가기 때문에 개인의 성격 등 특성을 무시하고 "고마 대충 그리 하입시더" 할 수는 없게 되었다.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서 수많은 분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을로서 시달린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다른 곳에서는 갑으로 둔갑해 함부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사실 이건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100kg가 넘는 거구에게 폭행당해 손가락이 부러진 사건을 곱씹어 보면, 그 순간 그 X가 분노에 차 있을 때 내가 입바른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억울한 마음을 잠시 참고 입을 다물었더라면 불의의 상해는 피할 수 있었으리라.




똥은 일반 쓰레기와 다른다. 치울 때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내가 똥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가능하면 자연 건조될 시간을 주자. 그리고 나도 똥을 싼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자. 내로남불이라고 사람의 기억은 자기 편한 대로 저장돼 있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혹은 훨씬 더 진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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