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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y 27. 2021

나는 혼자다

혼자인 시간을 잘 보내는 게 중요하다

이전에 MBC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을 재밌게 봤다. '나는 가수니까 노래로 승부하겠다'는 의미로 지은 제목인 듯하다. 그걸 따라 '나는 혼자다'라고 제목을 지어봤다. '혼자'라는 사실이 삶의 큰 정체성 중에 하나인데, 우리는 은연중에 '혼자'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 의미만 키워온 것 같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왕따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혼자인 삶이 대단한 낙오자인 것처럼 언론을 통해 부각된다. 물론 타인과의 관계가 일절 없는 혼자는 문제가 맞다. 혼자인 삶과 관계 속의 삶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인과 관계가 서로 얽혀있다. 혼자인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면 관계 속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관계 속의 삶이 순탄치 못하면 역시 혼자인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래도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혼자인 삶이 먼저다.


실업계 고교를 자퇴한 뒤의 재수 시절, 1년 뒤 또 한 번의 자퇴(인문계) 이후의 시간들. 그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진학한 또래 무리에 끼지 못했다는 자괴감, 열등감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다. 그런 어둠과 절망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외로우니, 그래서 힘드니까 운명을 원망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절망을 잊기 위해 세월을 잠시 허비하며, 순간의 쾌락에 몸과 시간을 맡겨도 된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내가 황당할 정도로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 물론 그땐 어린 나이라 지금만큼 분별력도 없었고 세상과 나를 알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 제도권 공부가 싫어서 두 번이나 고등학교를 스스로 그만뒀다면 제도권 공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면 됐었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그 많은 시간만큼 내게 자유가 주어졌으니 책이든, 음악이든 내가 원하는 만큼 실컷 읽고, 듣고 공부하면 됐을 것이다.


'나는 혼자라서 낙오자'라는 어디에서 주입이 됐는지 알 수도 없는 생각, 진실도 아닌 정체불명의 그 생각 때문에 패배감에 젖어 세월을 허송했던 것이다. 그때 혼자인 시간, 그런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혼자일 때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해 나갔다면 성인이 되어서는 훨씬 더 준비된 삶을 살 수 있었으리라.


자식들이 독립을 하고 나이도 많아진 지금, 혼자인 시간이 훨씬 늘었지만 외롭거나 괴롭지 않다. 나의 주된 활동들 - 책을 읽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글을 쓰고, 작곡을 하는 - 모두가 혼자서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활동들도 엄밀히 말해 혼자라고 할 수 없다. 책에는 저자가 있고, 피아노 연습을 위해 타인이 만든 유튜브 영상이나 교재를 본다. 그래서 이런 활동들 속에 있는 외로움은 고립된 외로움이 아니라 관계 속의 건강한 외로움이다.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다.


나는 연애상담을 해 줄 때도 A와의 이별 후에 A를 잊기 위해서 곧바로 다른 인연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당분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내 중심이 흔들리는 의존성 연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도 내게 상처를 주고 떠난 A와 별반 다를 바 없는 B를 만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괜찮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 돼야 괜찮은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길 것이고, 그런 사람이 내게 호감을 가질 것이다.


혼자라고 외롭고, 그래서 불만투성이 삶을 대충 보내고 있는가? 당장의 허전함을 잊게 해주는 것들로 시간을 때우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정신이 성숙하지 못했고, 진정한 삶의 의미도 모르는 것이다. 삶은 혼자서 가꾸어 나가는 것, 내 길은 내가 개척해 나가야 한다. 내 길은 오직 나만의 유일한 길이므로.


실직했다고, 시험에 떨어져서 낙담하는가? 직장도 없이 집에서 혼자 있다고? 취직한 자에게나 실직한 자, 합격한 자나 낙방한 자에게 똑같이 하루 24시간은 주어진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이다. 그 시간이 괴롭다, 외롭다, 비참하다, 초라하다는 결론은 누가 내린 것인가? 사회가 내린 것인가? 당신이 내린 것인가? 그 결론의 근거가 팩트에 기반한 것인가?


어두운 방 안에 촛불만 하나 켜 둔 공간과 분위기가 고요한 명상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어두운 마귀를 불러내는 주술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결국 당신의 인생은 남의 인생 들러리 같은 존재, 불만투성이 인생 밖에 안될 것이다.




<나는 혼자다>라는 우리 삶의 정체성. 이 문장이 우리 마음속에 건강한 울림을 주도록 하자. 신의 섭리 안에서, 자연과 인간관계 속에서 혼자일 수 있어서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과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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