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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y 20. 2021

자유에 대한 잘못된 정의

우리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태어나는가

자유 :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네이버 국어사전)


자유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나는 특히 자유를 좋아한다. 얽매이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고등학교 두 번 자퇴, 직장생활 3년 이상 한 적 없음, 자영업 경력 10년 이상... 이런 이력들이 내 성향을 잘 말해준다.


흔히들 삶을 후회의 연속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백지상태가 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가만! 처음으로 돌아가도 백지가 아니다. 부모형제와 동네(국가와 지역)가 이미 결정돼 있다.


즉 대출과 신용카드로 인한 빚이 제로이고, 인간관계에서 치명적 실수를 범하지 않았던 유아 시절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완전하고 진정한 자유인이 아니란 말씀이다. 나의 경우, 큰 사건만 보더라도 네 살 때 왼팔에 심한 화상, 여섯 살 때 부모의 이혼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동안 무의식 중에 큰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오늘 깨달았다. '사람(나)은 태어날 때는 어떤 부담이나 짐이 없는 자유 상태였다'는 믿음 말이다. 어릴 땐 최소한 부모의 통제와 규율 아래 있게 된다. 그것이 잘못된 철학이라도 부모의 인생관 아래 놓이게 된다. 크게 보면 독재 정권, 그릇된 교육, 사이비 언론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바로 노출된다.


그러니 삶이란 출생부터 바로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정글에 노출되는 전쟁이라 할 수 있겠다. 자의로 무언가를 제대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판단이 되고, 때로는 결정까지 된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억압하며 집어삼켰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사는 건 정말 지겨운 구속이라 생각했다. 왜 때가 되면 배가 고파와서 밥을 먹어야 할까? 왜 밤에는 꼭 자야 할까? 왜 배우는지 모르는 공부 때문에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해야만 하는 걸까?


그래서 일탈이 자유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밥을 안 먹고 음악만 듣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어디론가 떠나보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일탈은 건강을 해쳤고, 충동적인 행동은 그만큼의 책임과 대가 요구했다.


그래! 신이 인간을 인간의 굴레 안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한계를 벗어나려는 짓은 무모함이지 자유의 추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건강'이란 것도 젊었을 땐 객기를 부려보지만, 나이가 들면 습관 말고는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묘책이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나와 같은 급여생활자가 평생 동안 지는 짐인 '먹고사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짐이 지워져 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먹고 자고 입고 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허한 마음을 달래줄 뭔가도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돈이 필요한데, 죽을 때까지 이걸 나에게 그저 주는 사람은 네버~ 없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가 이 시대의 키워드가 아니겠는가.


정글이나 전장에서는 비장한 자세가 필수다. 그런데 나는 너무 안이했던 것 같다. 세상을 발아래로 보진 않았지만, 적당히 만만하게 본 것 같다. 마치 신용카드를 처음 발급받고 겁 없이 쓰던 사회초년생 시절처럼. 기본적인 방어 자세가 안돼 있었다. 그러니 세상에 계속 당했던 게 아닐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삶이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던 이유가 이거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일부터 당장 비장하게 살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그런 전사의 성향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최소한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한다. 세상은 정글이요, 태어날 때부터 우린 자유의 몸이 아니란 다소 슬픈 사실을.


하지만 이걸 깨달은 건 큰 소득이다. 날마다 반복하는 습관을 구속이라 생각했다. '다람쥐도 아니고, 왜 이 짓을 매일 해야 돼?' 하지만 자유는 주어진 것이 아니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며, 인간의 한계 안에서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린 어벤저스가 아니니까.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 매일의 저축, 매일의 독서, 매일의 글쓰기, 매일의 연주(연습)...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궁극적으로 자유를 향해 가는 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진정한 자유로 향하는 길은 바로 구속(습관)이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2)


낮춘다는 의미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인간의 한계 안에 있겠다는 -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우주적인 삶의 리듬에 순응하겠다는 - 자세가 우리를 더 크고 넓은 자유의 세계로 이끄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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