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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19. 2022

가능성 버리지 않기

형편에 맞게 살지 마라

벌여놓은 이런저런 일들이 모두 망한 후 마지막이란 각오로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음악이었다. 시반 퇴근, 방학 중에는 낮은 업무강도 같은 조건들이 음악과 병행할 수 있는 밥벌이로 딱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욕심을 내려놓고 커트라인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렬에 지원하기를 권했지만,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 떨어졌다. 2년간의 고생과 함께. 아내 말대로 다른 직렬이었으면 붙었을 꽤 괜찮은 점수를 얻고서 말이다. 교행직은 워라밸을 누릴 수 있는 직렬이라는 소문 때문에 교원 시험에서 넘어온 젊고 머리 좋은 친구들이 많이 지원하기 때문에 커트라인이 높았다.


낙방 이후 나는 전봇대도 타보고, 신문기자도 돼 봤다. 신문기자 일은 몸도 편하고, 나랑 그렇게 안 맞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쪽 업계의 소위 말해서 닳고 닳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생활이 내 성정과 안 맞았다.


나는 글도 사건과 팩트 위주의 글보다는 매우 주관적인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다. 또 기자란 직업은 늘 뭘 쓸까를 고민해야 하고 취재거리를 찾아다녀야 해서 머리가 쉴 틈이 없었기에 작곡이라는 창작 활동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만류를 뿌리치고 기자생활도 접었다.


그렇게 이일 저일 전전하다 나름 정착(?)한 일자리가 네 시간짜리 알바였다. 단순히 음악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 거란 바람으로 선택한 일자리였지만 사실 꽤나 힘들었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지치다 보니 실제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생각처럼 많이 확보가 안됐다.


그러다가 정말 뜻밖에 꽤 괜찮은 일자리 제안이 욌다. 업무강도가 꽤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자리였다. 워크넷에 공개된 내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했단다.


취직을 하고 난 후 어떻게 이 자리가 내게 오게 된 건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나는 이 분야에 경력은 15년 정도로 꽤나 길었지만, 나이로 치면 퇴물 수준이고, 자격증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랬다. 내 자리에 7년간 근무하던 친구가 회사와의 연봉협상이 어그러지면서 그만뒀다. 그래서 젊은 친구 두 명을 차례로 뽑았는데, 한 명은 출근하겠다 해놓고 연락도 없이 잠수, 한 명은 하루 출근하고 잠수를 탔다. 채용 담당 관리자는 젊은 친구들에게 학을 뗀 나머지 실무자에게 무조건 나이 든 사람을 뽑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래서 기회가 내게까지 온 거였다.


젊은 친구들에게는 낮은 연봉 때문에 이 자리의 다른 좋은 조건들이 별반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재밌는 건 워크넷 이력서에 내가 입력을 잘못해서 경력 기간이 6개월로 돼 있었다는 거다. 경력 6개월짜리 나이 많은 노땅! 그런데도 전화가 왔다. 아마 그분도 경력 기간이 단순 오류란 걸 알았나 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자리가 내가 그토록 원했던(상상했던) 교행직과 근무 조건이 비슷하다는 거다. 업무 강도가 낮아 퇴근 후 피로를 풀기 위한 휴식 시간이 따로 필요 없는 점, 긴 점심시간에 운동을 함으로써 저녁 시간을 한 시간 세이브할 수 있는 점, 업무 틈틈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는 점 등이 내게는 큰 매력이다. 심지어 사내에 제법 큰 도서관도 있다. 브런치에서 교행직에 근무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어보니 실제 교행직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워라밸 직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교행직에 합격했더라도 어쩌면 불만스러운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돈보다 시간의 가치를 더 크게 생각한다. 돈으로 시간도 살 수 있다지만 아직 그럴 능력은 안된다. 그래서 급여가 많고 시간이 없는 직업보다는 급여가 적어도 시간이 많은 직업이 훨씬 매력적이다. 최소한 넉넉한 시간을 이용해 돈 버는 공부라도 할 수 있으니까.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3년 반이 지난 시점에 내 노력과 상관없이 원하던 게 이루어진 걸 보면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는 옛말이 참 맞는 말 같다. 하지만 나도 한 게 한 가지는 있는데, 바로 워크넷에 이력서를 공개한 거다. 말하자면 취업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얘기다.


올림픽에서 앞 선수들이 다투다 넘어져서 어부지리로 우승을 하는 선수가 있다. 그렇다고 그 선수가 정말 한 일이 없을까? 아니다. 그 선수는 최소한 노력해서 국가대표가 되었기 때문에 올림픽에 출전했고, 그래서 그런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거다.


이와 반대되는 나의 이야기가 또 있다. 먼 옛날(?) 컴퓨터 가게를 폐업하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폐업하기 얼마 전에 뮤직카페를 오픈했는데, 동업자와 틀어지는 바람에 투자한 돈만 날리고 가게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내가 선택한 일은 푸드트럭이었다. 돈 없는 내 형편, 구속을 싫어하는 내 성격에 가장 적당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더 큰 꿈을 꾸지 않고 푸드트럭을 선택한 것이 참 겸손하고 현실적인 선택이라 여겼다. 겸손한 선택이란 컴퓨터 가게를 하다가 노점을 하는 삶으로 스스로 더 낮게 내려갈 각오를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 - 스스로 생각하기에 겸손한 -을 했다고 해서 신과 운이 내 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화가 닥쳤다. 우선 축제마다 다니며 장사하는 건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 실상은 식사를 제 때 할 수 없고, 모텔을 전전긍긍해야 하는 고달픈 생활이었다.


100kg이 넘게 나가는 거구의 상인에게 폭행을 당해 손가락뼈가 부러졌는데, 수술도 잘 되지 않아 손가락 사이에 오리발 모양의 흉터가 남고 말았다. 수술 이후 당분간 손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축제 기간 한 달의 매출을 고스란히 날렸다. 너무 큰 충격에 정신이 피폐해져 소송으로 싸울 기력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턱없는 합의금에 어영부영 합의를 하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실적이고 겸손한 나의 선택이 내게 가져다 준 복은 없었다. 뜻밖에 닥친 화가 나를 점점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음악(작곡)을 그때 시작했더라면, 그때 용기를 냈더라면 곡을 파는 기회가 좀 더 빨리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자신을 현실의 틀에만 맞추는 건 결코 겸손이 아니다. 그건 일종의 패배이고, 패배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돈이 없어서, 가게가 망해서 음악을 할 수 없다', '음악을 하는 건 지금 사치일 뿐이다. 시기상조다'라는 생각은 겸손이 아니다. 스스로 한계를 지음으로써 한계 안에 자신을 가두는 일이다.


음악을 위해 교행직을 꿈꾼 후 3년 반 만에 내가 원하던 환경을 얻었다.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그래서 나는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실수투성이 이력서지만 공개해 둔 덕분에 나는 이런 선물을 얻었다. 가능성을 오픈해 둬서.




아침에 일어나면 한 시간 정도 피아노를 친다(즐긴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반주를 하든지, 작은 소품들을 연주할 것이다. 그 다음은 산책 시간. 한 시간 정도 여유롭게 산책을 하며 악상을 떠올리고, 녹음과 메모도 할 것이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긴 후 저장해 뒀던 녹음 파일 중에서 오늘 당기는 멜로디를 주제로 작곡을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는 잠시 낮잠을 잔다. 메모해 뒀던 영화를 감상한다. 오후에는 기타나 드럼, 다른 악기를 연주하며 시간을 좀 보낸다. 전용 연습실에서 연습을 핑계 삼아 노래도 실컷 불러본다. 다시 작곡. 조금 더 심도 있는 작업을 한다.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 가사도 붙여본다. 녹음한 콘텐츠를 편집해서 유튜브, 오디오클립 등에 공유한다. 음악친구, 책친구,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가 있으면 오후에 여유롭게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것도 괜찮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새로운 음반을 탐색하며 이곡 저곡 남의 노래를 들어본다. 필요하면 곡 카피도 해본다. 소화가 다 되고 조금 깊은 밤이 되면 방음이 되는 나만의 음악 감상실에서 맞춤형 오디오로 본격적인 음악 감상을 한다. 어둠 속에서 제대로 된 오디오 장비로 음악을 들으면 최소 한두 시간은 깊이 빠져들 수 있다.


같은 패턴이 지루해지는 날에는 여행, 등산, 낚시, 먼 곳에 사는 친구 찾아가기로 기분 전환을 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미래의 삶이다. 나는 이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형편으로 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꿈일 뿐이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행운이 나를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일은 단지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겸손(실은 겸손이 아닌)해지지 않는 것이다.


'형편에 맞게 살지 마라'는 빚을 내서 무리하게 뭘 하라는 게 아니다. 작곡가가 되겠다고 몇천만 원 대출을 받아 상경하는 젊은이도 꽤 있는 모양이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일이 배수의 진을 친다고 꼭 잘되란 법은 없다. 오히려 어깨 힘이 들어가서 더 안될 수도 있다. '배수의 진'이란 이름의 과도하고 성급한 욕망보다는 내 노력의 가능성, 삶의 가능성, 행운이 찾아올 가능성을 믿는 것. 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지 않는, 끈질긴 희망이 중요하다.


우리는 영악하고 교만한 것 같지만 의외로 자신감을 잃을 때가 더 많다. 내가 그렇게 잘 될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사람인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당신은 그런 선물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세상 누구라도 다 그런 행운을 받을 가치가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스스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신이, 운이 선물을 줄 수 없다. 스스로 문을 닫아버려 선물이 들어갈 입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때와 삶이 나에게 선물을 주는 때가 다르기 때문에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런 기다림이 진정한 겸손이라 할 수 있겠다.




가능성을 버린다면 당신은 100만 원, 1000만 원, 1억보다 더 큰 것을 어리석게도 너무 쉽게 버린 것이다. 왜 그 좋은 것을 버리는가? 뭐가 될지 모를, 무슨 열매, 무슨 꽃을 피울지 모를 그 씨앗을 쓰레기처럼 버리는가. 가능성을 안고 가라. 무소의 뿔처럼 가도 좋고, 나비처럼 살랑살랑 가도 좋고,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도 좋다. 중요한 건 안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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