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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ug 14. 2021

장성한 자식들과의 휴가 에피소드

1.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인다. 설렌다.


큰아들은 가까운 곳에서, 막내는 조금 먼 곳에서 각각 독립해서 생활하고 있다. 사려 깊은 큰아들의 제안으로 우리 가족은 여름휴가 일정을 맞춰 모이기로 했다.


아내도 나도 일에 치여 지친 요즘 생활이기에 펜션을 잡아 하룻밤 보내는 것마저 번거롭게 여겨져서 그냥 집에서 쉴까 갈등도 했다. 그러나 대견한 큰아들의 제안도 있고, 우리도 없는 시간이나마 쪼개서 하룻밤 자연에서 힐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펜션을 예약했다.


아이들과 같이 살 때는 몰랐다. 지금은 각자의 삶으로 바쁜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에 다 같이 모인다는 사실만으로 설렌다.



2. 아들들의 여자 친구


아들 둘 다 여자 친구가 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 휴가 때 휴대폰 속 얼굴을 공개해줬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고 뿌듯하다. 부모가 100% 울이 되어줄 수 없기에 외로운 인생에 의지할 짝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게 여겨진다. 결혼 생각이 있는 큰아들에게는 가진 게 없는 부모로서 많이 미안한 마음이다. 부디 싸우지 말고 예쁘게 사귀어줬음 좋겠다.



3. 사람한테 시달리는 서민들, 우리들


나는 겨우 4시간 알바를 하는데도 사람한테 심하게 시달리는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을 맞추다 보니 부득이 이 일자리밖에 없다. 현재로선 그렇다. 풀타임이라고 내가 원하는 직종을 선택하기가 수월한 건 아니지만, 파트타임은 일자리 자체가 많이 없어 더 심하다.


아내는 착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나 못지않게 사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휴가라서 고향에 내려온 조카도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데,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한 모양이다. 대부분 직장 상사나 고객(진상)에게 받는 스트레스다.


막내도 영업직이라서 반품, 클레임 등 사람을 응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일상다반사다. 공무원인 큰아들도 민원 때문에 예외가 아니다.


모처럼의 휴가인데, 나름 고른다고 고른 펜션 주인장의 어이없는 몰상식이 기가 차다. 보통 숯을 준비해 가지만 유료로 숯을 준비해주는 펜션도 있기에 전화로 문의했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봅니까?" 이런다. 그때부터 낌새가 찝찝했지만, 휴가 날짜가 얼마 안 남아 '그냥 내가 시비하지 말고 하루 참으면 되지'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펜션에 도착해서도 가만히 있는 나에게 사사건건 시비가 아닌가? 손님도 많지 않은 평일인데, 차를 3대나 가져왔다고 따지듯 면박을 준다. 또 인터넷으로 예매하면 자기가 수수료를 제외한 요금을 받는다면서 인터넷으로 예매하지 말란다. 부탁도 아니고 명령조다.


방충망 사이로 방에 개미가 많이 들어와 에프킬라를 요구했더니 '문까지 닫아야 하는데 왜 방충망만 닫아놓았냐'라고 으름장을 놓더니 급기야 에프킬라를 내동댕이치고 가버린다. 정말 가관이었다. 평상시 같으면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지만 모처럼의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아 응대를 안 했다. 오히려 흥분한 아들들을 내가 말려야 했다. 어쩌겠나. 펜션을 잘못 고른 내 잘못이지.


하... 정말 사람 스트레스!!! 평상시 일터에서도 사람한테 시달리는데, 휴가까지 와서 시달려야 하나. 가족기업이라도 일궈서 우리 모두 사람 스트레스 덜 받고 오손도손, 알콩달콩 일하며 살고 싶다.


한편으론 이런 정글 속에서 잘 버텨내고 있는 아들들과 조카가 대견스럽고 그들을 응원해주고 싶다.



4. 추억을 만들어 줄 의무


객실이 좁았기에 우리 네 식구는 다닥다닥 붙어 누워서, 자기 전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로 막내가 이야기했는데, 막내가 어렸을 때 낚시에 얽힌 추억이었다. 기억력이 좋은 막내 입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들어보니 '참 많이도 돌아다녔구나' 싶었다. 50 평생 내가 거의 유일하게 잘한 게 있다면 가족들과 낚시, 눈썰매 등에 빠져서 많이 돌아다닌 게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엄마와 헤어지고, 여자에 빠져 살았던 아버지와도 추억이 거의 없는 나의 유년시절을 돌이켜 보니 내가 내 가족들, 자식들의 마음에 이런 소박한 추억들을 심어준 게 얼마나 중요하고 잘한 일인가 싶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만 말이다.


낚시나 붕어 자체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것에 얽힌 추억은 장성한 자식들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향수고 행복이었다. 50대로 진입하는 지금부터도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 이유가 더 나이 들어서 추억거리를 소환하기 위함 아니겠는가.


다음날 결국 우리는 막내의 소원 성취를 위해 붕어낚시를 갔다. 낚시를 안 간지 너무 오래라 정보도 없고, 낚시 장비가 한 짐이었지만 결국 고생 끝에 붕어 얼굴을 봤다. 막내는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추억을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 추억을 만들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 보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말 그렇다.



5.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


큰아들이 최근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더라며, 내년에는 가족끼리 꼭 가자고 한다. 경비는 자기가 다 부담할 테니 시간만 내란다. 대견한 아들이다. 철없고 이기적인 아빠였던 나는 내심 부끄럽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오히려 자식한테 배운다.


일찍 부모를 여읜 친구를 옆에서 쭉 지켜보면서 '부모님의 부재가 주는 헛헛함이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잘난 것이 없는 부모라 할지라도 존재만으로도 자식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 훌륭한 부모는 아니지만 못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 중 하나다.



6. 에필로그


낼모레면 다시 직장으로, 현실로 돌아간다. 젊었을 때는 자식들만 다 크면 삶이 편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전히 많은 문제와 도전들 속에 살고 있다. 최근에 배우 차인표 님이 세바시 강연에서 한 말.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한 명의 응원군이면 된다' 다행히 내게는 응원군이 제법 있다. 일상 속에서 다시 변화를 향해,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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