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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n 26. 2021

무료한 반복에서 탄생하는 창조

피아노 스케일 연습을 해봤더니...

피아노 스케일 연습을 하고 있다. 메이저 스케일 연습. 쉽게 말해서 각 키마다(시작하는 건반이 틀림)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양손으로 동시에 치는 연습이다.


반복은 어쩌면 다양한 문화 생성의 시발점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음을 같은 길이로 연주하면 지겹기 때문에 다른 길이와 패턴으로 연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렇게 리듬이 탄생한다. 또한 연속하는 다음 음을 어떤 음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뇌가 느끼는 감정이 아주 달라진다. 이렇게 화음이 탄생한 것 같다.


이런 원리를 글에도 적용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음악이 각 음들과 시간을 베이스로 한 조합이듯이 글 또한 단어와 타이밍의 조합이다. 한 문장 안에는 주연과 조연이 있다. 이런 연구는 글뿐만 아니라 대화법에도 상당히 유용할 것 같다. "당신은 베푸는 데는 선수지만, 청소에는 매우 취약하네요", "당신은 청소에는 매우 취약하지만, 베푸는 데는 선수군요" 아내에게 집안 청소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려면 어느 문장이 더 나을까? 더 나은 제 3, 4의 문장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바보다.

나는 바보처럼 살았다.

나는 바보인 척 연기함으로써 사람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내가 바보처럼 보이는 것은 천재와 매우 가깝다는 증거다.

사람들이 나를 바보라 여기는 근거가 매우 취약하므로 사실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바보일 수 있다.

내가 너에게 "바보야"라고 말하는 건 너를 사랑한다는 뜻인데, 넌 그걸 모르지. 그러니 넌 정말 바보야.


바보가 바보와 만나면 창의성이 증폭될 수 있다. 엉뚱한 두 객체의 조합이 뜻밖의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여태껏 실패만 한 바보라면 더더욱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뭔가를 해야 한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다'는 말은 나는 바보가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정말로 바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생 바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왜 바보처럼 울고 있어"라고 말한다. 바보처럼 우는 건 어떻게 우는 건가? 그럼 천재처럼 우는 건? 이건 말장난이다. '바보처럼' 이란 부사는 우는 행위 자체를 언급하는 것이지 우는 행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장난은 의미가 있다. 천재처럼 우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보'라는 단어로 떠오르는 대로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피아노 앞에서 음을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하다. 요리와도 닮았다. 가자미 구이 옆에 바나나를 썰어 두니 우선 데커레이션 성공이다. 약간 느끼한 가자미의 맛을 달짝지근한 바나나가 희석시켜주면서 바나나향도 입안에서 맴돈다. 그럴듯하다.


신이 천지창조를 즐겼듯이 인간도 창조를 즐기는 속성이 있다. 창조는 무료한 반복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무료한 반복을 무시하면 안 된다. '수십 년 함께 살았다'는 무료한 반복에서 새로운 부부관계가 창조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삶 속의 무료한 반복 속에서 엉뚱하고 기발하고 신선한 창조를 꿈꾸자. 나만의 재미있고 의미있는 피조물을 만들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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