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송>이라는 15초짜리 자작곡을 처음 유튜브 채널에 올린 날짜가 2019년 2월 5일이다. 나름대로 완성도 있는 대중가요라고 만든 첫 곡이 <짝사랑>인데, 이 곡은 2019년 11월 28일 완성했다.
그러니까 '작곡'이란 걸 시작한 지는 3년이 다 되어가고, 제대로 마음먹고 작곡한 지는 2년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 여러 측면에서 중간 결산을 해보려 한다.
1. 실력
실력의 기본은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곡인가' 보다 '기획사에 데모로 보내거나 발매를 할 정도의 최소한의 완성도가 있는가'가 먼저이다. 우선 화성학. 나는 기본적인 다이어토닉 코드 상에서 3화음만 쓸 줄 아는 수준이었는데, 4화음을 왜 써야 하는지, 텐션이 뭔지 정도는 알게 됐다.
반주를 만들 때는 코드 진행이든 리듬(드럼)이든 샘플을 쓰는 수준이었다. 반주에 샘플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어설픈 내 피아노 연주로는 반주 녹음이 불가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샘플을 계속 쓰다 보니 표현의 한계가 느껴졌고, 뭔가 답답하고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멘토의 지적에 충격을 받고 4비트 피아노 반주를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높은 산처럼 느껴졌던 연주가 가능하겠다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드럼 역시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아서 차근차근 공부하면 안정감 있는 비트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를 해보니 화성학이든, 드럼 공부든 넘지 못할 산은 아니라는 게 중간 결론이다.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데 있어서 <백병동 화성학> 정도의 지식은 불필요하다. 물론 알면 좋지만 시작부터 완벽을 기하려고 여기에 힘을 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책을 마스터하려고 덤볐다가는 - 웬만한 수재가 아니고는 - 얼마 못가 지쳐 나가 떨어질 것이다.
대중가요는 이미 발매된 수많은 곡들이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이 곡들을 모방하고 응용함으로써 자기가 배울 수 있는 만큼 조금씩 배워나가면 된다. 무엇보다 대중이 사랑하는 곡은 어려운 이론이나 화려한 반주가 주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지식과 테크닉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처음부터 움츠려들 필요는 없다.
2. 인맥
오프라인에서 만난 작곡가 두 분과 매니저 한 분, 가수협회 관계자 한 분이 있다. 이 중 작곡가 한 분은 나의 멘토로서 1년에 2~3번 만났고, 계속 만날 예정이다. 멘토는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이런 조언이 없다면 혼자서 헤매면서 세월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대중음악계에 아는 사람이 1도 없었던, 맨땅에 헤딩하던 초창기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진전된 상태이다. 곡을 파는 데 있어서 인맥이 아주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모든 일은 사람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특별한 스킬이 있어서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분들이 아량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어떤 전문 분야든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인간적이고, 초심자를 수용을 해주는 전문가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3. 수익
2020년 9월 9일부터 2021년 9월 7일까지 총 5장의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저작권, 실연권, 음반제작자에게 지급되는 수익이 모두 내게 들어온다. 모두 내가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평균을 내보진 않았지만 작년 11월, 12월 입금 내역을 보니 월평균 2000원 정도 된다.
금액 자체만 보면 하찮은 수준이지만, 내가 완전 무명이며 홍보도 거의 안 함을 고려하면 꽤 고무적인 액수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점점 퀄리티 있는 음반을 발매한다면 수익을 통한 동기부여는 제법 희망적이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엄청난 힘이다.
4. 여건(환경)
작곡하기 좋은 여건이야 돈이 많아서 일을 안 하고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겠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작곡을 위한 시간 확보를 위해 절반의 수입을 포기하고 4시간 알바를 선택했다. 그 일을 1년 넘게 했다. 4시간이라고는 하나 선택한 일이 육체노동 + 감정노동이었기에 만만치 않았다. 꽤 힘들었다. 4시간만 일할 수 있고, 나이 많은 아저씨도 써주는 일자리 자체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이직을 하려 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지금은 다시 전에 하던 일을 풀타임으로 한다. 우연히 그렇게 됐다. 업무 강도가 낮기 때문에 퇴근 후와 주말에 음악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한다. 이 여건이란 녀석도 꿈(음악)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하고 무서운 적군이다. 여건이란 전쟁터에서 어떻게 내 꿈을 안고, 끌고, 다독거리며, 잘 갈 것인지가 큰 숙제다.
5. 가능성
가능성은 그야말로 생각하기 나름이다. 유명 작곡가, 천재 작곡가가 많고도 많다는 현실에서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상정할 것인가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스스로 가능성을 믿어야 계속 자신에게 연습과 창작의 기회를 줄 수 있다. 기가 죽어버리면, 손을 놓아버리면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최종적인 계약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여러 군데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연락을 받았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하루하루 움직이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는 건 쉬운 것 같지만 어렵다. 희망보다 절망이 훨씬 다가가기 쉽고, 현실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6. 지구력
가능성을 믿어야 지구력이 생긴다. 오랫동안 버티며 견디는 힘. 또 애정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단순히 곡이 팔리기만 고대하며 음악을 한다면 열악을 환경을 견뎌내지 못한다.
피아노도 빨리 안 늘고, 곡도 금방 팔리지 않기 때문에 지구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단 음악뿐이겠는가.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신에게, 운에 맡기는 게 제일 현명한 처사 아닐까 싶다.
작곡을 시작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이렇다 할 결실이 없다고 슬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소소한 결실들도 나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많은 곡을 쓰고 싶다. 기획사에 보낼 데모곡, 내 개인 앨범 모두 좀 더 완성도 있게 만들고 싶다. 외로운 중년의 삶, 음악은 내게 커다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