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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l 22. 2020

30년 콤플렉스, 쉬쉬 해봤자 그게 뭐라고

가방끈 짧은 아웃사이더, "넌 그냥 실업계 고등학교 가서 돈 벌어."

나는 초등, 중학교 때 공부를 꽤 잘했다. 성실한 타입은 아니었고, 놀면서 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땐 지금처럼 수업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한창 열심히 하던 중2 땐 전교 6등까지 해봤다. 그렇게 죽어라 두어 달 공부만 해보니 딱 공부가 싫어졌다. 공부와 성공보다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격렬한 사춘기를 앓던 나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때 우리 집은 아버지와 새엄마의 불화로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형은 피아노를 치겠다고 아버지께 당당히 요구를 해서 빠듯한 형편에 연습용 별채(시골 방)와 피아노를 얻었지만, 나는 쓸데없이 철이 일찍 들어서 내 꿈을 위한 어떤 요구도 하지 못했다. 사실 꿈이 뭔지도 잘 몰랐고 집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그런 시절이었다.


공부든 음악이든 언제나 두각을 나타내고, 주위의 인정을 받던 형에게 가려 난 언제나 존재감 없는 둘째였다. 그렇게 방황하던 어느 날 아버지의 충격적인 한마디. "넌 그냥 실업계 고등학교 가서 돈 벌어." '나도 형만큼은 아니지만 공부를 잘했는데, 아버지께 나는 그냥 이 정도 존재인가 보다.' 한창 예민하던 그 시절에 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나를 더욱 방황과 분노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농땡이를 치다가 입학고사 없이 내신으로 갈 수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된다. 성적에 맞춰 간 OO공업고등학교는 당연히, 너무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제도를 하고 쇠파이프를 만지는 그 수업이 너무너무 싫었다. 그렇게 두 달만에 나는 그 공고를 자퇴한다.


그리고, 1년 재수. 당시 나름 명문이라는 사립 인문계에 입학하지만, 단 하루 만에 다시 자퇴를 한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그 선생이 강조하던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하는 그 3년'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나는 좀 불안정한 상태였다. 재수를 하면서 대인기피증도 생겼고, 여전히 현실보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 결혼 후에 대학에 가보려고 - 먹고 사느라, 여러 핑계로 대학은 못 감 - 고졸검정고시(대입검정고시)를 쳐서 합격은 했다. 그리하여 나의 최종학력은 '대입검정고시'.


이력서에 이 한 줄을 쓸 때마다 난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이렇듯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못해봤고,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도 없다. 그 풋풋한 시절,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짧은 가방끈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 나는 활자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글이 있으면 웬만하면 다 읽어야 한다. 못 배워서 무식하다는 소릴 듣기 싫어서 책도 남들보다 더 많이 보려 했다.


단순노무직이 아니고서야 기본이 전문대졸 이상을 요구하는 취업시장에서 23살에 결혼한 나의 생계유지는 당연히 녹록지 않았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신문의 취업란을 뒤질 때마다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었던가. 난 저 사람들보다 못난 게 없는데, 이 놈의 가방끈 때문에 원천 차단이구나. 오라는 일자리는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자리들 뿐이었다. 나의 일자리 변천사는 한 장을 할애해야 될 정도니 여기서는 패스.


2018년, 5000만 원을 깨 먹으면서 2년간 준비한 공무원 시험에 장렬히 떨어지면서 나는 '성공'과 '안정'이라는 그 키워드를 그냥 놓아버렸다. '용써도 안 되는 것 용쓰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자'로 내 인생의 모토를 바꿨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학벌사회다. 나는 비주류, 아웃사이더로 30년을 살아왔다. 더 이상은 내 가방끈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남은 세월은 정말이지 눈치 보지 않고, '나'로서 살고 싶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하면서 최대한 '나'에 가깝게 살고 싶다. 학벌 때문에 나를 무시할 사람은 여전히 무시하겠지만,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삶이다.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다 가면 된다.


다행히 애들이 다 커서 나는 하고 싶은 음악과 글쓰기를 하며 현재를 살고 있다. 유명 작가도 아니고 아직 한 곡도 팔지 못한 작곡가지만, 오전 4시간 알바를 하고 남은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신께 감사드린다.


사회가, 시스템이 나를 반겨주지 않지만 그 이전에 삶이, 사람이, 사랑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이 나이에 나는 먼저 내가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는 내가 되려 한다. 나에게 당당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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