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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pr 04. 2022

불행의 원인을 찾아라 2

나는 왜 끈기가 없을까

이전 글에도 밝혔지만 나는 일적으로 배우고 익히게 된 컴퓨터 관련 기술 외에 꾸준히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먹고살기 위해 익힌 이 기술은 그 이상으로 파고들지 않았고, 어떤 단계에 머물러 발전이 없었다. 그 단계 안에서의 시간 투자도 마음에 우러나서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 일도 본질적으로 꾸준히 한 일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약 3년간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고 나름 꾸준히 하고 있는 음악(작곡) 공부와 악기 연습에 대해 나는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실히 자신감과 자부심을 얻었다.


내가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10대 때부터 수없이 음악세계 안에 진입하려 애썼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포기하고 음악을 잊고 지내는 시간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형이 부산 남포동 일대에서 사다 나르는 해적판 LP들을 듣고, 학원에 안 다녔지만 피아노를 잘 치는 형을 부러워하며 음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시작됐다.


음악에 대한 내 첫 번째 실패 사례는 클래식 기타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면서 아버지를 졸라 클래식 기타를 장만했다. 듣는 음악은 락이었지만, 클래식 기타로 기초를 닦으면 포크기타 실력도 금방 는다는 말에 클래식 기타를 선택했다. 뭔가 주변에 흔치 않아 뽀대도 나고 말이다.


독학으로 배운답시고 크로매틱 연습만 완벽하게 해 볼 거라고 낑낑거리다 포기한 기억이 난다. 나는 왜 재도전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했을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초등, 중학교 때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라는 타이틀을 매우 쉽게 얻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교과과정의 난이도가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고, 나름대로 책을 좀 읽어서 그런지 수업시간에 잘 듣기만 해도 성적이 그런대로 잘 나왔다. 벼락공부도 효과가 있었으며, 6반까지 있는 시골학교였으니 공부 경쟁률도 낮았던 거 같다.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 나는 머리 좋은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로 인식되고 있어서 나 자신도 당연히 그렇다고 믿었던 거 같다.


그런 똑똑하고 유능한(?) 내가 악기에 도전했는데, 감히 악기가 내 말을 듣지 않으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거다. 나는 당연히 결실을 빨리, 쉽게 내야 하는 아이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당황한 거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 내린 정의 '결과를 빨리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 배치되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자존심을 지키려 한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결과를 빨리 내지 못하면 초조해다. 어릴 때의 나처럼 난 여전히 똑똑한 사람이어야 하니까. 그러다가 잘 안되 그 분야는 얼렁뚱땅 덮어버리고, 또 다른 만만해 보이는 분야를 찾는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므로 이것도 저것도 다 할만하고, 만만해 보인다. 그런데 옮긴 분야도 막상 해보면 또 똑같은 벽에 부딪힌다.


이것이 내 끈기없음, 실패의 패턴이었다. 프로그래밍 공부, 새로 야심차게 시작한 장사, 악기 연습, 화성학 공부 모두에서 마찬가지.


만약 초등, 중학교 때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을 통해 공부를 잘했더라면 어떤 일을 성취하는 건 쉽지 않고,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는 독이 된 칭찬으로 잘못된 정체성을 세우고 있었던 거다.


클래식 기타 실패 이후에도 나는 피아노 학원을 기웃거리고, 일렉기타 학원을 들락거렸다. 벼룩시장에 가서 묘한 소리가 나는 국적불명의 전자오르간을 사 오기도 하고, 직장인 밴드를 서너 군데 거치기도 했다. 화성학 책을 잔뜩 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음악세계의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었다. 음악세계의 주변인에 불과했다.


지금 내가 꾸준히 음악을 한다고 해서 음악이 내 생계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어디까지 발전할지도 알 수 없고, 운이 따라줄지, 혼자만의 취미 아닌 취미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나이도 많고 시간도 빨리 간다.


그래도 삶에서 적어도 하나에는 진심이고 싶다. 마음을 다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큰 자산이고, 행복의 조건이다. 마치 삶에서 진정 사랑을 주고받을 한 사람은 필요하듯이 말이다.


내 불행 - 끈기없음 - 의 원인을 찾았다. 꾸준함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내 부족함을 수시로 인정할 것, 남들의 인정과 평가에 담담히 대처할 것,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그것마저 받아들일 것, 운을 믿되 운에 의지하지 말 것, 집착하지 말고 삶을 즐길 여유를 가질 것.


'그래서 남는 게 뭔데?'라고 묻는다면 그 세계(음악)를 깊이 아는 것, 그 세계 안에서 족적과 추억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덤으로 내 세계가 확장되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 한 사람 행복하기만 해도 큰 결실이다. 내가 행복하면 적어도 내 가족에게는 행복을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안된다고 환경과 운을 원망하지 말자. 내 자존감이 잘못 정의된 채 내 속에 박제되어 있지 않은지 조용히 관찰해보자. 그것만 바로 잡아도 삶이 훨씬 가벼워진다.


'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지만 나를 알아가는 건 죽을 때까지 진행형이다. 나는 현재 나를 몇 퍼센트나 알까? 불행의 원인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은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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