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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pr 11. 2022

부정적인 속단 말고 긍정적인 계획

고등학교(실업계, 인문계)를 두 번이나 중퇴한 건 내게 심한 콤플렉스였다. 괜찮은 성적 때문에 나름 잘 나가던 학창 시절과는 달리 학벌사회인 현실은 냉정했,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당시 나는 심한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때의 자퇴가 현실 도피가 아닌 긍정적 계획에 따른 자퇴였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처음 실업계 고교를 선택한 건 '실업계 나와서 돈 벌라'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과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의 결과였다. 학력고사 없이 내신으로만 갈 수 있는, 실업계 중에서는 꽤 상위권의 학교였다.


하지만 내신이 월등하지 못하다 보니 커트라인이 낮은 배관과에 겨우 붙었다. 제도도 머리 아파 싫었고, 파이프를 다루는 게 노가다 같아서 정말 싫었다.


공부해야 하는 현실을 도피해서 선택한 것이 실업계였는데, 거기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다.


재수를 하고 간 인문계에서는 등교 첫날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선생님이 겁을 엄청 줬다. 밤 11~12시까지 매일 하게 공부할 자신이 없는 놈은 일찌감치 제 갈 길을 가라는 말에 나는 스스럼없이 두 번째 자퇴를 했다.


돌이켜보면 자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퇴 이후의 계획 없이 충동적, 도피적으로 자퇴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스스로를 '고교 중퇴자'라는 비관적 틀에 가두고, 삶을 가꾸려는 긍정적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 말이다.


'이래도 저래도, 아무리 지혜를 짜내 봐도 삶은 의미가 없다'는 허무주의는 부정적 속단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겨우 17년을, 제한된 환경과 인간관계 속에서 자란 소년이 삶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50이 된 지금도 제대로 모르는데 말이다.


삶 전체나 삶의 어떤 요소에 대한 부정적 속단은 회피나 도피를 불러오고, 그 회피나 도피는 또 다른 부정이나 비관의 연결고리가 된다. 이것이 그때의 자퇴를 되돌아보는 현재의 시선이다.


자퇴를 하고 충실히 검정고시 준비를 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음악 등)에 대한 공부를 일찍 시작했더라면 나는 훨씬 일찍 음악세계에 진입할 수 있었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았을 것이다.


부정정 속단 대신 긍정적 계획


계획을 세운다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다. 하지만 계획 없이 대강대강, 허둥지둥 살다가는 더욱더 엉망이 돼 버리는 게 또한 삶이다. 긍정적 계획이 중요한 이유는 끊임없이 계획을 수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계획은 시작할 때 비장한 마음으로 딱 한번 하는 각오가 아니라 매일매일 되새기고 어루만지는 각오다.


자퇴를 했든, 모아둔 돈이 없든, 현재 실력이 형편없든 매일매일 긍정적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는 삶. 반대로 1을 도피해 2로 숨으면 2에서 또 도피할 거리가 생긴다. 점점 그렇게 되면 나의 영역은 결국 쥐꼬리만 하게 된다. 가랑잎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게 되는 소심하고 자신 없는 삶.


'나는 안돼, 이건 안돼'하는 부정적 속단은 금물이다. 가능성의 싹을 스스로 일찌감치 잘라버리는 일이다. 삶의 가능성, 희망에 대해서는 상당한 질척거림이 필요하다.


자퇴 당시처럼 지금도 나는 평범하거나 초라하다. 하지만 이제 그때처럼 도망가지 않으려 한다. 보잘것없어 보여도 조금씩 계속 쌓아나가려 한다.




부정적 속단의 파괴력을 알고, 긍정적 계획의 희망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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