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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n 08. 2022

이런 내게서 어떻게 아름다운 것이 나올 수 있나요

완성된 트랙에 멜로디와 가사를 붙이는 작곡 레슨 과제물 중 다섯 번째 곡의 로디 초반을 일부 만들었다. 대략 2주였나? 적당한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아 쩔쩔맸다. 요즘 잘 나가는 조영수 님 같은 작곡가는 어떻게 수많은 곡들을 수월하게 들까?


돈, 시간, 재능,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는 이런 나에게서 어떤 좋은 것, 아름다운 창작물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나 하나도 가누지 못하는데, 자책에 시달리는데 작품이라니. 우습다는 비웃음이 올라온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는 고장 난 기차 안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 동안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하며 나온 결과물이라고 한다. 다 알듯이 당시 조앤의 재정상태도 심각하게 안 좋았다.


보통 '영감을 받는다"라고 표현한다. 내 안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다'라고 한다. 물론 내 안에 재료들(소재, 테크닉)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핵심적인 영감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그걸 받으려면 내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려면 이미 머금은 물 없이 말랑말랑해져 있어야 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나 자기 비하, 무기력, 강박, 불안에 빠져 있으면 내 속에 영감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개인적으로 탁 트인 시야, 소음 없는 장소, 좋은 사람들이 내게 영감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내게 자주 선물해줘야 한다. 현재 내 상태와 상관없이, 내가 잘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냥 노멀한 나 자신에 대한 선물 말이다.


음악에 투자하는 시간 때문에 거의 1년간 손놓고 있었던 '윌슨' 어플의 상담자 역할을 연휴기간 동안 다시 해봤다. 내 상담에 대한 리뷰가 1년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 요청자와 매칭이 잘 되었다. 반려동물로 인한 갈등, 동거 요구 거부로 인함 헤어짐... 사연은 정말 가지각색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인간이 이토록 섬세하고 예민한 동물인가 싶다. A에겐 아무런 문제가 아닌 것이 B에겐 심각한 문제가 된다.


나도 자주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고, 외로움도 잘 타고, 남과 비교도 잘하는데, 이런 내가 상담할 자격이 있을까? 상담과 심리학에 대한 정규 과정은커녕 가방끈도 짧은데 말이다.


그래도 시간이 여유 있면 가능한 상담을 하고 싶다. 상담은 내게도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남긴 리뷰를 읽어보면 우선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을 고마워한다. 상담 요청자 자신이 이미 절반은 답을 알고 있다. 상담은 어쩌면 그들의 막혀있는 감정 파이프를 어주는 역할을  뿐이다. 정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다.


내가 아주 늦게, 조금 깨우친 건 결국 남을 도와야 내가 잘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내가 흔들리지 않는 시몬스라서 창작물(글, 음악)을 만들고, 상담을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해먹에 가깝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흔들림 속에서도 국수기계가 국수 뽑아내듯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남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뽑아낼 수 있다. 내가 흔들려보지 않고 어떻게 수시로 흔들리고, 온갖 문제로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그들을 공감할 수 있을까. 인간 사회의 온갖 사연을 녹여낸 글이나 음악을 창작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음원을 발매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 물론 천 원 단위다. 상담료도 적긴 하지만 통장에 들어온다. 이런 돈은 특별하다. 월급과는 그 의미에서 비교가 안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인데, 누군가가 들어서(도움이나 위로를 받아서) 나는 돈까지 벌게 됐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환상적인 소득이다.


상담자 역할은 브런치를 통해 제안받았다. 음원 발매는 나의 어설픈 작곡 실력과 근자감의 결과다. 그래서 구독자가 안 느는 브런치라도, 아직 한 곡도 팔지 못한 무명 작곡가라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 것이다.




불완전한 내가 아름다운 뭔가를 창작할 수 있다는 것, 그 창작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돈까지  수 있다는 것. 이 짜릿하고 뿌듯한 기쁨을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무 뿌리든 당근이든 대파든 무언가를 썰기 위해서 나는 계속 한 발씩 내디디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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