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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01. 2022

나는 무엇을 할 사람인가

나는 컴퓨터 수리 기사다. 앞으로 작곡가와 작가가 되고 싶다. 주말에는 곧 퀵 배달 라이더가 될 것 같다. 주변의 형님, 친구들이 생계를 좇아 고군분투하는 걸 보면 맘이 짠하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다.


학교에 여러 물품을 납품하던 형님은 매출이 점점 줄자, 최근에 업종을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가게 인테리어를 전환 중이다. 아마 자기 생에서 마지막 업종 전환이 될 것 같다며,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매장에 매여 있어야 할 미래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 형님과 같이 일하던 형님도 졸지에 잃은 일자리를 다시 알아보던 중에, 자기 전공을 살리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멀리 천안까지 거주지를 옮겨야 할 판이다. 이 지역에는 나이 많은 형님을 받아줄 곳이 없는 모양이다. 수학학원을 운영하던 친구는 수강생이 점점 쪼그라들어 요양원 시설관리직에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계약이 연장될지 걱정 중이다. 가게가 폭삭 망해 유흥업소 영업을 뛴다던 어릴 적 친구는 영 안되겠던지 택시 일을 시작했고, 내게 빌려 간 적은 돈을 1만 원이나 2만 원씩 찔끔찔끔 갚고 있는데, 입금했다는 문자를 볼 때마다 그 살아보려는 의지와 간절함과 신의를 지키려는 가상한 노력에 눈물이 날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해 나와 종종 공연을 보러 다니던 A 씨는 아파트 상가 임대료를 받지만, 빚내서 매입한 상가로 인한 은행 대출금 상환 등으로 생활이 빠듯해 퀵(배달 대행 라이더)을 시작한 지 한 달째다. 나도 주말에 퀵을 해볼까 해서 물어보니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는지 아주 상세히 알려주신다.


용기를 내서 퀵 업체에 전화해 보니 사장님이 '요즘은 학원 원장님, 선생님 할 것 없이 별의별 사람들이 다 퀵을 하니 체면 차릴 것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래! 다들 이렇게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잘난 것 없는 나는 왜 여태껏 몸을 사렸을까. 음악에 집중해야 하니 다른 일은 웬만하면 하면 안 된다는 기준도 알량한 나의 자존심일 뿐인 거지. 작곡과 퀵 라이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나는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아닌 내가 친 사고(빚투)를 수습하기 위함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여행에는 언제나 여정이, 길이 존재한다. 여정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여행이 목적지에 도착해서만 즐거워서야 되겠는가. 여정 중에도, 길 위에서도 여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여행이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최종 목적지가 음악이든, 귀촌이든, 여행자의 삶이든 그 여정 가운데 하기 싫은 일도 즐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비바람은 맞지 않고 손에 때와 물과 흙을 묻히지 않겠다는 심보로, 어떻게 만만치 않은 이 세상에서 내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주식을 해보니 연 10%의 수익률을 달성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알바로 한 달에 100만 원을 번다면 1년에 1200만 원. 주식으로 치면 1억 2천만 원이 있고, 상당한 실력과 운이 있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익률이다. 건강한 몸과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1억 2천이라는 현금이 있어야 벌 가능성이 있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건강한 몸과 노동 의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부자로 가는 첫걸음인지도 모르겠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말이 없다. 자랑할 것도 기죽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 생명으로서,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존재의 가치를 다하는 나무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나는 무엇을 할 사람일까? 무엇을 하는가 하는 행위와 외형도 무시할 수 없지만, 삶을 꿋꿋이 지켜내는 이웃들의 모습이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이고, 그 모습들 앞에 나는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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