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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Oct 21. 2022

통 큰 여자와 사는 나여, 기죽지 마라

작년에 한도까지 꽉 채워 받은 대출로 산 주식이 폭락했다. 박봉의 월급쟁이로서 미래가 안 보여 한 행동이었지만, 많이 성급하고 어리석었다. 바람을 넣은 존 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사실은 존 리가 바람을 넣은 게 아니라 내가 바람이 든 거지. 최근 아내에게 빚투를 이실직고한 이후 내 신변에 큰 충격은 없다. 오히려 아내는 자기 명의로 대출을 받고, 적금을 깨서 고금리의 내 대출을 일부 대체, 상환해 주었다. 그러면서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진짜 아웃'이라고 경고한다.


내가 그동안 줄줄이 사고 치고 망한 걸로 치면 벌써 이혼을 몇 번 당했어도 할 말이 없다. '난 언제쯤 남편 덕 보냐'는 아내의 말에 '기다려 보자'란 말 외에 달리 무슨 말을 할까.


사고를 이미 쳐버린 현재의 내 숙제는, 폭락한 주식을 언제 팔아서 빚 일부를 정리하고 나머지 빚을 차근차근? 꾸역꾸역? 갚아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연약하고 생활력도 없던 아내에게 이런 아량과 대범함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내가 사기를 당하거나 사치를 하는 등 사고를 쳐서 빚더미에 않았다면 나는 과연 아내처럼 쿨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크게 다투지 않고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아내를 도와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아량이 넓은 사람 같지 않다.


큰 사고를 친 나는 입을 다물고 반성 모드로, 이런 글도 쓰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기는 죽으면 안 된다. 어떻게 손실을 메꿀 수 있을까? 대략 2000만 원 손실이라면 책을 2000만 원 치 읽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되, 한 권당 1만 원씩 계산하면 2000권을 읽어야 한다. 2000권 정도 읽으면 계속 사고 치는 나의 어리석음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한 달에 4권을 읽으면 2,000권 읽는데 약 42년이 걸린다. 그것도 내가 92살까지 꾸준히 읽어야 가능하다. 절반 뚝 잘라서 1000권 읽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스스로 마음의 짐을 지고 싶다. 묵직한 의무감을 지니고 싶다.


또 사고를 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이런 내가 무섭기도 하다. 충동적인 나를 자제시키기 위해서라고 책을 통해 지혜를 구해야겠다.


큰 여자와 사는 것도 내 복이다. 큰 복이다. 복을 받았으니 더 잘해보자. 더 끈덕지게 삶에 애착을 가져보자. 정 빚의 압박이 심해지면  야간이나 주말에 대리운전이나 퀵을 뛰어도 된다.


죽으란 법은 없고, 죽어서도 안된다. 빚은 빚이고, 빚 속에서도 사람과 삶은 고귀하다. 빚에 허덕이며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다. "실수하고 실패한 나를 인정합시다. 빚이 삶을 뒤덮도록 내버려두지 맙시다. 미래를 속단하지 맙시다"


나는 현재 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정리 중이고, 작곡 스킬을 위해 피아노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내가 좀 뻔뻔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가 죽지 않아야 통 큰 여자에게 보답할 수 있으니까. 부지런히 움직여야 기회가 생기니까. 미운 오리새끼 같은 나를 다시 받아들이고, 오늘도 심호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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