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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Oct 08. 2022

예술의 순간

우유부단, 결정 장애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삶에서 상황은 늘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발생하고, 그 발생은 판단을 요구한다. 교류가 거의 없던 어릴 적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돈을 꿔달라고 하는 식이다. 여행을 가면 스스로 그 지역 명소와 맛집 등 여러 곳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곳까지 간 시간과 에너지와 돈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다. 만나서 술 한잔하자는 메시지가 친구들 단톡방에 뜨면 가야 할지 거절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자식이 애를 먹일 때는 훈계나 조언을 할지 침묵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가을이 가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한번 다녀와야 할지 돈을 아껴야 할지, 수많은 책과 영화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이 모든 것이 판단을 요구한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100% 후회 없는 선택이란 불가능하다. 선택이란 예측에 기반하고, 예측은 말 그대로 결과에 대한 추측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중요한 선택 기준의 하나로서 나는 '예술의 순간'을 제시하고 싶다. 나의 선택지가 삶 전체에서 나에게 '예술의 순간'을 선사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가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술의 순간'이란 무엇인가. 바로 아름다움과 감동이 있는 순간이다.

우리는 너무 허울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아름다움과 감동조차도 진정한 것인지, 가식적인 것인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여행을 가서 사진을 여러 컷 찍다 보면 '아, 정말 잘 나왔네', '각도가 예술이네', '배경이 그림이네' 하는 사진들이 몇 장 있다. 사진을 많이 찍다 보면 그런 각도, 배경을 어느 정도 잘 고를 수 있다. 그런 사진들은 두고두고 봐도 뿌듯하고 흐뭇하고 편안한 기분을 선사한다. 인생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가 탐욕이 아닌 아름다움과 감동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마음을 늘 지니고 있다면 이런 '예술의 순간'을 선택하는 지혜가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어려운 친구에게 빌려주는 돈이 내게는 없어도 그만인 돈이고, 친구가 정말로 힘들다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판단은 '예술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명소이지만 이미 자본주의에 물든 - 돈은 과하게 들고, 사람들 발길에 치이는 - 곳이라면 그곳에서 '예술의 순간'을 만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지만 독서나 사색, 산책 등 나와 오롯이 만날 수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면 그 시간은 '예술의 순간'이 될 것이다. 친구나 지인의 모임이 단순히 술과 신변잡기에 대한 잡답으로 그친다면 그 시간이 '예술의 순간'이 될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이야기로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도 궁극적으로 동물 쪽 -본능 - 에서 신 쪽 - 해탈, 승화, 감동 - 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몸부림이 아닐까.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많이 먹는 것 - 소유 - 보다 맛있게 먹는 것 - 감동 - 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과식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모든 상황이, 주위 사람이 내 뜻대로 움직이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욕심을 내려놓자. 한꺼번에 많은 것을 취하려는 욕심도 내려놓자. 그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의 삶에서 '예술의 순간'을, '신의 찰나'를 많이 발견하고 맛볼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자. 우선 내가 그런 순간을 많이 만나봐야 나중에 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런 순간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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