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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Sep 18. 2022

복수심과 자존감의 상관관계


사소한 오해로 관계가 소원해진 친구와 실로 오랜만에 만났다. 장모와의 빚 문제로 마음이 힘들고 예민해져 있던 친구는, 이전과 다르게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닫고 혼자 숨으려 했다. 소위 '감정 소모'를 하기 싫다는 것.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우정을 유지해 온 사이이므로 이 정도 다툼으로 절교를 한다면 매우 황당하고 허무할 터였다. 친구는 작정하고 온 듯 내게 밥을 샀고, 우리는 강가 벤치에 앉아 새벽까지 기나긴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의 주제는 역시나 결혼 초에 빌려 간 돈을 아직도 갚지 않는 장모였다. 아들(처남)에게는 수억씩 사업자금과 생활비를 대주면서 자신의 피 같은 돈 - 부모님 유산 - 은 상환을 자꾸자꾸 미루기만 하는 장모에 대해 원망과 불신, 분함과 억울함을 격하게 토해 냈다. 짝꿍이라도 자기 편을 들어주면 좋으련만 친정에 끌려다니는 듯한 태도에, 아내에게도 불만이 많았다. 지금은 그 잘난 아들마저 우울증에 걸려 죽느니 사느니 수면제를 먹고 소동을 벌인다고 하니 친구의 눈에는 이 모든 게 혀를 찰 상황인 거다.


만날 때마다 자주 들었던, 어찌 보면 똑같은 레퍼토리였지만 친구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친구는 비단 돈 문제뿐만 아니라 신혼 시절 경차를 탄다는 이유로 처갓집 모임에 오지 말라고 했던 장모에 대해 상당한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명절에 안부 인사도 드리지 않았고, 어째 됐건 지금 건강이 안 좋은 처남에 대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


친구는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장모든, 처남이든, 아내든 상대방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나처럼 생각하고 움직여주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친구는 자신에게는 잘못이 전혀 없고 그들은 지탄받아 마땅하며, 자신이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복수'라니 하니 떠오르는 기억. 나는 10대 후반에 경찰서 신원조회를 통해 생모의 주거지를 알아냈다.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기보다는 '나를 버린 엄마는 어떤 꼴로 살고 있는지 한번 보자'하는 뒤틀린 마음이었지 아마. 홀로 사시던 엄마는 당연히 나를 무척 반갑게 맞아주셨고, 그렇게 수개월인가 왕래가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자취방을 얻을 사정이 생겼는데 - 그때 아마 아버지 집에 잠시 거주했던 것 같다 - 이런저런 살림살이가 필요하다고 하니 엄마가 가져가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 말에 내가 '그러면 알겠다'고 하면서 1톤 트럭을 가져와 엄마의 살림살이를 모조리 가져갔다는 것이다. 엄마는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살림살이를 다 싣고 가는 아들이 황당하셨지만, 월세 보증금에 쓰라고 50만 원까지 주셨다고 한다. 그 당시 50만 원이면 엄마에겐 큰돈이었다. 그렇게 또 수개월이 흐른 후 엄마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이사 당시 얻어준 방을 찾아갔는데, 내가 없더란다. 그러니까 엄마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방을 빼서 다른 곳으로 간 것이다.


이번 추석 때 술 한잔하면서 엄마가 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는 사실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엄마의 살림살이를 싣고 간 건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기적이고 철이 없었겠지만 역시나 복수심이 제일 컸다. '엄마가 나를 버렸기 때문에 나는 10대 때 가출해서 공장 등을 전전하며 이렇게 힘들게 살았다. 그러니 엄마도 한번 당해보시오!' 이런 마음. 그때 정말 마음이 많이 아프셨단다. 왜 안 그랬을까. 이혼 당시 엄마가 우리 형제를 거두지 못한 것을 엄마의 무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여자에게만 빠져있던 아버지 밑에서 우리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컸지만, 남편을 잘못 만나 이혼을 당하고 자식까지 뺏긴 후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엄마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50이 되고, 자식들이 독립하고, 때로 자식에게 해준 것 없는 부모라는 원망도 들어보고, 사업과 시험에 줄줄이 실패하고, 건강도 많이 잃은 후에야 나는 엄마를 조금 이해하게 됐다. 복수심은 사라졌다.


그래서 친구에게도 이런 말을 해줬다. 복수심에 불타봐야 너만 상하고, 니 자존감은 점점 추락한다고. 상대방에게 원망의 화살을 집중하지 말고, 너의 바운더리를 넓혀 보라고. 쉽지 않겠지만. 나도 그랬고, 결국엔 용서를 해야 니 삶에 집중할 수 있고, 좋은 일과 미래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고.


나는 엄마와의 일 말고도 푸드트럭을 하다 내 손가락을 부러뜨린 거구의 X 때문에 몇 년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손가락 수술의 결과가 매끄럽지 않아 움직임도 불편하고 흉터도 보기 흉했기 때문이다. 특히 악기를 다루는 내게 손가락은 무척 소중한 자산인데, 손가락을 보고 움직일 때마다 그 돼지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에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역시나 축제 때 와서 한몫 보려는 장사꾼에 불과했다.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는 생각에 위협을 가하려던 것이 그만 상대방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만 것이다. 그러니 그를 내 불행의 절대적 원인 제공자로 생각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 감정만 소모되고, 나만 손해다.


그 축제에 내가 안 갔더라면,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해도 된다는 선배 장사꾼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손가락 끝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던 그 X에게 내가 분노를 표출하거나 따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원인이든 타이밍이든 당시 일을 정교하게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건 복수심에 불타는 과거를 다시 현재로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주술일 뿐이다. 지금은 음악과 글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사랑하는 주위 사람을 보살피며 미래로 나아가는 내가 있을 뿐이다.


다행히 친구는 내 말에 뭔가를 깨친 모양이다. 복수심과 분노를 내려놓고 우선 장인·장모께 안부 전화부터 해보겠단다. 그리고 자신이 취업 준비를 위해 공부에 전념할 때, 어깨가 빠질 정도의 힘든 일도 마다않고 묵묵히 내조해 준 아내하고도 다시 마음을 넓혀서 대화를 시도해 보겠단다.




복수를 하고 나면 시원할까? 시원하고 통쾌하니 자존감이 올라갈까? 그렇지 않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찜찜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나 역시나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인 걸 생각해 보면 복수라는 걸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없다. 담담히, 묵묵히 나의 삶을 사는 것만이 자존감을 지키는 현명한 사람의 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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