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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Sep 17. 2022

불편한 동거가 필요한 이유


연애 때의 뜨거운 감정이 모두 사랑은 아니다. 나이가 들고, 열정은 사라지고, 권태가 찾아오며, 현실의 민낯을 보고 나면 대부분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그 뜨거움이란 컵 안에 사랑 말고 어떤 것들이 들어있었던 걸까? 현실도피, 자기만족, 자기 연민 같은 것들. 그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했다기보다는 연애 당시 나의 필요, 불만을 충족시켜줄 만한 부분이 상대방에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차포를 다 떼고 나면 순수한 사랑이란 앙상한 뼈다귀만 남은 형상일지도 모른다.


연애가 길어지거나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단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자상하고 재밌는데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 착한 심성에 시부모께 잘하는데 집안 정리 정돈이 안되는 아내. 시댁이나 친정 문제에 있어서만 합리성을 잃는 그이. 상대방이 이렇다면 당신은 하나를 포기하고 살든지, 이혼을 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 함께한 세월 동안 내게 베풀어준 그이의 사랑과 희생이 경제적 무능과 정리 정돈 안됨, 시댁 또는 친정 편애 등의 단점을 능가한다면 우리는 이혼이 아닌 불편을 감수하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 보자. 완벽한 배우자 상을 바라는 건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상대방에게 그걸 바란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저런 말을 안 할 텐데. 왜 저렇게 X가지가 없지? 배려를 모르는 사람. 하는 짓 보면 답답해 미치겠네'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하며 속을 끓인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살아온 환경,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가치관과 취향까지 그는 내가 아닌 그이다. 그래서 '만약 나라면'이라는 가설의 시작 자체가 잘못됐다. 그는, 만약에 100을 곱해도 절대 나일 수 없는 그일 뿐이다.


그래서 불편한 동거 - 마음에 안 드는 그이와 사는 것 -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이다. 미쳐버릴 것 같은 극한 상황이 아니다. 불편한 동거를 거부하는 것은 삶의 일부를 거부하는 것이다. 부부간, 부모자식간, 직장상사와 동료간, 심지어 취미모임조차도,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불편함과 안락함이 공존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 삶의 길은 점점 좁아져 오솔길이 되다가 잡풀이 덥혀 막혀버린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좋은 직장에 어렵게 취직이 되어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첫 출근을 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직장은 내가 꿈꾸던 세계가 아님을 쉽게 깨닫게 된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괴롭히는 몬스터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는 듯한, 다소 살벌한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돈을 벌러 이곳에 온 게 아닌가. 이상적인 인물들과 취미를 공유하러 온 게 아니다. 나의 꿈이 성공한 사업가든, 경제적 자유인이든, 자유로운 예술가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 먹고, 입고, 자고, 싸기 -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직장에서도 역시 불편한 동거를 인정해야 한다. 이렇듯 가정이든 직장이든 불편한 동거가 필요악이라면 우리는 이 동거에 적응해야 한다. 우선 몬스터를 몬스터로 보는 시선부터 거두어 보자. 그가 진정한 진상또라이대마왕이라기보다는 내가 그를 자꾸 몬스터화시키고 있을 확률이 크다. 아내가 쌍욕을 해댈 때는 내가 힘들 때 묵묵히 희생했던 그 얼굴을 떠올려 보라.


불편한 동거를 감내하는 마음은 나 자신에게도 필요하다. 나란 인간도 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 과거에 한 짓, 방금 한 짓, 현재 하고 있는 짓 - 마음에 안 들 때마다 나를 내팽개친다면 단 하루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꿈도 불편한 동거를 감내해야 이룰 수 있다. 피아노, 목공, 네일아트, 미용, 엑셀... 무엇이든 배우기를 시작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고속도로는 없다. 뜻대로 안되는 상황과 잘하지 못하는 내 모습만 바라보면 짜증밖에 안 난다. 잘하는 사람의 기사나 영상을 보면 그냥 딱 포기가 답인 것 같다. 반대로 타고난 천재들은 너무 시시해서 감흥을 못 느끼고 그 일의 소중함을 모른 채 그 세계를 쉽게 떠나버리기도 한다. 잘 안되는 상황, 잘 못하는 나와 불편한 동거를 꾸준히 해 나가는 사람만이 결국 결실을 본다.




이 정도라면, 불편한 동거! 해야 되지 않겠는가. 불편한 동거가 없으면 삶이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니 말이다. 이제 불편한 동거를 원망하지 말자. 우선 나부터가 불편한 인간으로 태어났고, 울퉁불퉁하고 불편한 지구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게 사람의 삶이다. 뒤뚱뒤뚱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걸어도 펭귄은 자기가 갈 곳을 간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 역시 마땅히 소중한 가치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불편한 걸음, 불편한 길이라도 갈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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