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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14. 2022

아버지의 응급실행

빚진 나의 삶

치매를 앓은 지 몇 년째지만 거동에는 이상이 없었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뇌출혈이 의심된다는 119 대원의 말에 바짝 긴장해서 간호사 출신의 처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아줄 병원이 없다는 119대원과 새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도 도착지를 못 정해 운전대를 잡고 우왕좌왕하던 참이었다.  창원삼성병원 응급실에서 겨우 받아줬다는 소식에 엑셀을 밟았다.  


인공호흡기를 꼽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더없이 초라했다. 응급실이 만원이고, 코로나 때문에 한 명만 들어올 수 있어 CT를 찍고 의사의 한마디를 듣기까지 한없이 홀로 기다려야 했다. 이틀째 저녁 때 아버지는 깨어나셨다. 다행이 뇌출혈은 아니란다. 간성혼수가 의심된다고 한다. 이전에 간경화를 앓은 경험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확정은 아니지만 사진상으로 간암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단다.


깨어난 아버지는 2~3분 간격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를 힘들게 했다. "진주에 몇 시에 가느냐"', "지금 몇 시냐?" 그리고 끊임없이 자잘한 요구를 했다. "가래를 뱉게 휴지를 갖다 달라", "마스크를 씌워달라, 벗겨달라", "불빛이 밝으니 천으로 얼굴을 덮어 달라, 치워 달라" 이런 요구들을 몇 분에 한 번씩 계속 반복했다. 주삿바늘을 계속 빼셔서 간호사가 침대 난간에 팔을 결박해 놓았는데, 그것도 풀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셨다. 평소 아버지께 별로 감정이 안 좋던 나는 짜증이 많이 났고, 아버지께 그 짜증을 드러냈다. 새벽 4시 반이 넘어가면서 아버지가 좀 잠잠해지자 차에 가서 겨우 눈을 조금 붙였다.


의사는 중환자실 입원을 권유했지만, 그랬다가는 계속 병원에 끌려다닐 것 같아 거절하고, 아침에 진주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 마음은 우울하고 기분은 착잡했다.


요양 등급이 나오면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다시 옮겨 모실 계획이다. 초라하고 무의미한 모습으로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아버지와, 가난과 씨름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마음을 지치게 한다.


아둥바둥 거리며 사는 나도 결국 저렇게 될까? 조금이라도 더 고상하게 늙고 싶어서 이렇게 발버둥치는 걸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장남 노릇 못한다며 형을 탓하는 아버지를 보며 '아직도 자기의 잘못을 모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 걸린 아버지께 과거사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동안 내가 아버지를 보살핀 것도 아니건만 요 며칠 그냥 마음이 무척 답답할 뿐이다.


내 작은 아들은 어둠 속에서 그만 나와서 자존감을 끌어올려 보겠다고 한다. 그래 아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지. 왜 인간은 타의로 태어나 삶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야 하나. 주어진 삶을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똥 기저귀를 갈아 보았다. 응급실에 있는 다른 환자나 간호사들에게 냄새를 풍길까 봐 얼른 말아서 쓰레기통 깊숙이 버렸다. 물티슈로 몇 번이나 아버지의 뒤를 닦다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 일을 새어머니는 수년 간 하신 거구나. 그래도 새어머니는 애정이 많이 남았는지 요양병원 입원 후에도 아버지 염려에 수시로 전화를 하셨다.


착 가라앉은 내 기분과 몸과는 다르게 아버지 뒷일을 수습하는 데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119대원, 새어머니,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 여동생, 영업을 마쳤는데도 사정을 듣고 밥상을 내준 병원 주변 식당 사장님, 진주의 지인들... 역시 사람은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가 없다. 아는 사람은 아는 사람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대로 위기의 순간에 나를 돕는다.


삶을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차피 녹록지 않으니 퍼진 라면처럼 살아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다행히 삶은 고통이나 수고 속에서도 보람과 기쁨을 준다. 투잡을 해 보려고 온갖 을 다 알아보니 정말 돈 벌기 쉬운 세상으로 바뀐 걸 실감한다. 의지만 있고, 시간만 있으면 적은 돈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행을 다니며 숲과 풍광 속에 넋을 잃는 것도 좋지만, 도시 속에서 빚을 갚을 희망으로 한두 푼 부지런히 모으는 것도 보람과 의미가 있다. 삶의 낙과 의미가 꼭 밝은 곳에만 있는 건 아니더라. 배달대행 픽업을 하러 가보면 맥x, 버x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청년들이 있다. 밤을 새우며 환자들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하는 응급실의 간호사들도 다 20대였다. 어딘지 모르게 안일했던 나는 그들의 치열한  삶 앞에 부끄러웠다.




나를 위한 삶은 잘못이 없지만, 나만을 위한 삶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와 베풂으로 인하여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다면 나 또한 최소한의 선의와 보답은 가지고 행동하는 게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이고,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무작위로, 반복적으로 어리석은 나는, 신과 자연과 사람들이 베푸는 무작위의 은혜와 선의 덕분에 오늘도 생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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