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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15. 2022

기사냐 기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전에 지역 인터넷 언론에서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시청에서 같이 어울리던 다른 언론사 기자 형님은 나를 잘 봤는지 가끔 볼 때마다 기자로 같이 일해보자며, 좋은 자리가 나면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호의를 거절하기가 뭣해서 그냥 "예예" 하고 말았다. 지금 나의 직업인 컴퓨터 정비기사도 딱히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지만, 광고 압박에 기레기 소리도 많이 듣고 원치 않는 취재도 해야 하는 기자도 좋다고 하기는 애매한 직업이었다.


물론 기자는 글을 쓰는 직업이고, 사회 문제를 취재하는 것이 부당하거나 부정한 상황을 그냥 못 지나치는 내 성격에 맞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먼 훗날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게 된다면 '전직 기자'라는 타이틀은 좀 먹히겠지만, '전직 컴퓨터 수리 기사'는 전혀 먹힐 만한 타이틀이 아니잖나. 더군다나 '기자'는 나의 짧은 가방끈을 감추기에 그럴듯한 타이틀이다.


이번에 그 형님이 나를 추천한 신문사는 종이 신문이 발행되고, 네이버에 노출되는 일간지였다. 전에 근무했던 언론사보다 규모나 재정 면에서 훨씬 안정적이고, 광고도 담당이 따로 있어서 신경 안 써도 된단다. 나는 일은 한가하지만 한 공간에 갇혀 지내고, 상사 눈치를 많이 봐야 하며, 존재감이 전혀 없는 현재의 일자리에 답답해하던 차였다. 더군다나 여긴 계약직, 기자 자리는 정규직이다. 하지만 역시 추천으로 들어간 두 번째 신문사에서 짤린 경험 때문에 정규직이라도 공무원이 아닌 이상 안심할 순 없었다.


나는 선택 상황에서 언제나 새로운 걸 선택하는 성향이다. 잘 안되더라도 뭔가 배울 게 있고, 이직을 결정할 때, 당시의 일자리가 공무원이나 대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애착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신문사로 이직하기로 거의 결정을 내리고, 신문사 대표와 미팅 약속을 잡은 전날에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평상시 같으면 의논도 안 하겠지만, 마지막 단계에 고민이 돼서 슬쩍 물어본 어머니의 대답이 '극구 반대'라 기분이 안 좋았다. 아내도 시원한 찬성이 아니었다. 나는 취재 핑계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점과 기사를 잘 써서 지금보다는 존재감 있는 생활을 하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깨어남을 기다리며 할 일이 없어진 나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 그러다가 부끄럽지만 내가 평소 인격과 능력을 인정하는 「보통사람들」 공저자 단톡방에 이 문제를 올리게 되었다. 50이 다 되고도 이런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물어본다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난 언제나 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수긍하니까.


중앙 언론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작가님의 확실한 반대 표로 나는 갈등을 그만두고 기자 자리를 포기했다. 평소 그분의 현명함을 지지하기도 했고, 여러 말로 기자 생활 당시의 고충을 다시금 떠오르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 신문사에서 아버지 일이 어떻게 됐냐고, 약속을 다시 잡자고 문자가 왔다. 나는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거절을 해버렸다. 아버지 문제로 마음이 무거운데 내 문제까지 더 짐을 지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놓친 떡이 커 보이기 마련이다. 나는 존재감 없는 현재의 생활에 감사하고, 체력을 안배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며,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나의 문제와 더 나아가 인간의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 볼 것이다. 비축해 둔 체력으로 투잡을 뛰어 빚에서 빨리 탈출할 것이다. 물론 음악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으면서.


50평생 거의 내 고집대로만 살아왔다. 동기야 어쨌든 결과가 다 별로였다. 어쩌면 그래서 이번 결정은 가족과 친구의 조언을 따랐던 것 같다. 늘 내 생각대로 해왔지만 마이너스의 손이었으니 말이다. 내 꿈을 정확하게 말하면 기사도 기자도 아니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자아는 작곡가이면서 작가다.




"나는 작곡가가 되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다.

나는 심금을 울리는 곡을 쓰는 작곡가다. 나는 깊이 있는 글로 마음을 움직이는 작가다."


여러 책에서 시킨 대로, 바로 지금 현실인 것처럼 노트에 내 꿈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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