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새 Nov 28. 2022

대출 연장이라는 모욕

수년 전 10월에 현재 아파트에 이사했으므로 10월에는 대출 여럿을 연장해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각종 서류를 떼서 담당자에게 내민다. 이자를 꼬박꼬박 냈음에도 현재 대출이 여기저기 많아 겨우 턱걸이로 연장이 통과된다.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은 껑충 뛰었다. 은행 앞에, 대출 담당자 앞에 나는 철저한 을이 된다.


한 금융기관은 진주에 지점이 없어 창원까지 가서 서류를 전달하고 왔는데, 자기들이 잘못 알았다고 대출 연장이 안된다고 다시 전화가 온다. 이런 우라질! 서류 하나 빠뜨릴까 봐 애쓰고 용썼던 내 시간과 에너지는 어디 가서 보상받나? 나는 다시 한번 비참해진다.


컴퓨터 가게를 하던 30~40대 시절에는 돈에 대한 개념이 지금보다 더 없었다. 월세가 싸서 고정비 부담이 없었고, 수리를 가면 늘 현금을 만졌기 때문에 돈이 많지도 않았지만, 딱히 궁하지도 않았다. 돈에 벌벌 떨며 아등바등 살기 싫었던 나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난을 정면 대응하지 않고, 늘 대충 어떻게 되겠지 하며 재정 문제를 뒤로 미루며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부자가 되겠다며 책도 읽어보고, 다른 종류의 여러 장사에 도전도 했지만 절박함이 없어서인지 늘 뒷심이 부족했다.


돈을 빌린다는 게 얼마나 을스러운 것인지 왜 자각하지 못했을까? 생각 없이 카드를 긁어대다가 결제일에 통장의 잔고가 몽땅 빠져나가 버리는 나날들을 애써 외면해 가며 살아왔다. 돈은 사람에게 완벽한 행복을 선사하진 못하지만 상당한 굴욕감과 모욕감을 안겨줄 수 있다.


나는 음악 하고 책 읽고 글쓰기만으로도 바쁘지만, 돈 문제, 빚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정면 응시하기로 했다. 내가 진 빚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돈이다. 나보다 잘 나갔던, 잘난 사람들도 무수히 투잡을 뛴다. 부자들이 말하는 저절로 수입이 들어오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을 움직여 당장 현금을 벌어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푼돈을 모아 빚을 갚고, 최초의 목돈을 만들어 봐야 한다. 그래야 그다음 단계가 있다.


삶은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 낮과 밤에 내가 일하는 모습이 다르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칠 때 내 모습이 다르다. 내가 그 세계에 빠져있을 때는 그런 나다. 경직된 하나의 모습으로 나를 고정하고 제한할 필요가 없다.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이란 책에 의하면,  나를 따분한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할수록 나는 프래질해진다. 배달대행도 할 수 있고, 대리기사도 할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고, 피아노도 칠 수 있고, 작곡도 할 수 있다면 나는 안티프래질하다. '에헴, 나는 양반이라구!' 이런 체면치레가 진정한 삶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앞으로 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그것을 하는 게 맞다.


엊그제 <모티>라는 현대무용 공연을 봤다. 끄티(절벽)에서 끝나지 않고, 모티(모퉁이)를 돌아 다시 희망을 얘기하는 몸짓과 음악에 울컥하고 뭉클했다. 삶이란 이래야 한다. 살아있어야 한다. 따분한 책상에서 졸고 있는 것보다는 거지와 이야기하는 게 낫다.


요즘 투잡 뛰느라 피아노 치는 시간이 줄어들어 두렵긴 하다. 하지만 새벽 기상에 성공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시간을 잘 확보한다면 투잡을 하면서도 독서와 피아노, 나아가 작곡에 시간을 잘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경직된 예술가가 되고 싶진 않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지만, 은밀하게 삶을 즐길 줄 아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사냐 기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