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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Feb 14. 2023

배달대행 일을 통해 인생을 배우다


배달대행 라이더를 전업으로 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현실적으로 좋은 직업이라 할 순 없지만, 나의 실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 일을 통해 삶의 지혜를 제법 깨칠 수 있었다.  



1. 시스템 상의 문제  


라이더를 통해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시스템 상의 문제를 조금 언급해야겠다. 이건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바로 노동자 착취 구조다. 신체를 외부에 노출시키고 두 바퀴로 달리는 오토바이는 근본적으로 매우 위험한 교통수단이다. 따라서 안전히, 천천히 타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배달 앱을 중심으로 대리점, 가맹점, 배달기사라는 3주체가 맞물려 돌아가는 이 시스템에서는 이것이 절대 불가능하다. 물론 수도권에서는 배달의민족, 쿠팡 등에서 단건 배달을 시행하고 있고, 배달 물량이 많아 안전과 수익이 어느 정도 보장되지만 지방에는 아직 그런 기반이 없다. 한 콜씩 단건 배달을, 신호를 다 지켜가며 일해서는 최저시급도 벌어가기 힘든 구조다.


15분 이내에 고객에게 음식을 배달 완료해야 하는 건 고객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다. 15분이 지나면 음식이 식고, 면은 분다. 식은 음식을 받은 고객이 별점 테러라도 가하면 가맹점 사장님은 힘들어지고, 빈정이 상한 사장님은 수없이 드나든다는 온갖 배달대행 플랫폼의 영업(사원)을 통해 얼마든지 대리점을 갈아탈 수 있다. 이렇게 가맹점에게 있어 을인 배달대행 대리점주는 가맹점을 붙들어두기 위해 기사를 잘 관리해야 한다. 배달사고(주로 배달시간 지연)가 나지 않도록 문제를 일으키는 기사가 없는지 배달 앱의 관리자 화면을 통해 수시로 주시, 관찰한다. 그리고 배차제한(해당 가게에 그 기사가 출입할 수 없도록 앱 상에서 제한을 거는 것) 등을 통해 해당 기사에게 페널티를 줄 수 있다.


가맹점 입장에서도 고객으로부터 상당한 돈을 받고 정성껏 조리한 음식이 빨리 배달되기 바라는 건 당연하다. 최소한 늦게 배달되기를 바라는 사장님은 없다. 수고하시라고 늘 인사하거나 배려적 차원에서 채근하지 않는 사장님이 있는 반면 유난히 자기 가게는 빨리, 즉시 배달하라고 독촉하는 사장님도 있다.


기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페널티를 받지 않고(나도 배차제한을 꽤 당했다가 최근에 풀렸다) 일 못하는 기사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서, 신호를 위반해가며 시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질주할 수밖에 없다. 신호를 위반하는 것은 품위 없고 부끄러운 행동이지만, 시간을 지키기 위해 나의 꺼림직한 양심과 타인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신호를 위반할 때마다 자존감이 손상된다.


시간에 쫓기고, 가맹점주와 대리점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배달기사는 과속과 신호위반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시스템상의 문제다. 또한 배달 앱 인공지능이 분배해 주는 콜을 하나라도 더 배당받기 위해 운행 중간중간, 때로 운행 중에도 끊임없이 앱 화면을 터치해야 하는 짓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떨어뜨린다. 마치 인공지능이 하사하는 돈국물을 한 방울이라도 더 빨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형국이다.(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이 떠오름)


외국에는 이러한 긱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노동조합도 이제 꽤나 형성이 된 모양이다. 아직 체계나 규모는 미미하고 미비하지만. 이 글의 논지가 노동운동이 아니므로 시스템 상의 문제는 이 정도로 각설한다.



2. 인지 오류


직장에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므로 내가 좀 실수를 해도 덮이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라이더는 홀로 일하며, 자신의 실수가 실시간 결과로 나타나므로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은 판단을 하기 전에 인지를 한다. 숟가락과 젓가락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숟가락과 젓가락을 구분(인지)할 줄 알아야 한다. 일을 하면서 대표적으로 겪은 인지 오류는 비슷한 구역의,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비슷한 이름의 아파트 혼동이 있다. 타이트하게 짜인 배달(콜) 일정에서 다른 아파트로 잘못 가 엘리베이터라도 타게 되면 그때부터 마음은 조급해지고 시간은 줄어들고 멘붕이 온다.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 같은 동의 다른 라인을 혼동하기도 한다. 상호가 비슷한 가게를 헷갈려 같은 동선일 줄 알고 콜을 잘못 잡았다가 식겁한 경우도 있다. 새 주소가 혼동을 줄 때도 있고(주소 지명은 분명히 우리 동네인데, 실제 장소는 다른 동네), 지도를 자세히 안 보고 선택해서 머나먼 골짜기로 배달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모든 오류는 결국 나로부터 비롯되는데, 그 대표적 원인은 서두름이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대충 보고, 데이터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감을 믿는다. 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여럿 있음에도 주소나 지도를 자세히 안 보고 '내가 아는 그 아파트'라고 믿어 버린다. 호수도 1502보다 1205라는 숫자를 내가 더 선호한다면 1502호를 1205호라고 믿어버리는 식이다. 이런 인지 오류를 재확인하지 않고 퇴근시간에 1205호에 가게 되면, 다시 1502호에 도착해서 배달을 완료하기 위해서 몸고생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



3. 판단 오류


기사가 콜을 잡은 후 5분 이내에는 취소할 수 있다. 2~4개의 콜을 잘 조합하는 것이 관건인데, 업무의 실제 효율과 상관없이 먼저 잡은 콜, 내가 선호하는 가게(사장님이 친절하거나 음식이 빨리 나오는 가게)의 콜을 우선시하는 내 모습을 알게 됐다. 랜덤하게 발생하는 배달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가게(위치, 음식 나오는 시간 등을 고려)들을 조합하는 게 합리적인데도, 먼저 잡은 콜을 쉽게 버리지 못하거나 비효율적인 거리지만 선호하는 가게의 콜에 집착하는 경우 등이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주식(기업)의 현재 상태나 미래 비전이 어떻든 내가 선택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갖고 있는 것이나 진정성이 없는 인간관계를 오래 알았다는 이유로 끊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요즘 『habit』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판단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평소 선호에 따라 습관적으로 한다는 걸 이 책을 보며 더 잘 알게 됐다. 배달의 특성상 동선이 매우 중요한데, 길 또한 여러 경로가 있음에도 최적의 경로보다는 평소 습관적으로 다니는 길로 다닌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직선로가 있음에도 나는 늘 기역 자로 우회전하며, 우회전 지점에 A 가게가 있는 길로 다니는 식이다.



4. 결론


라이더를 하면서 일으키는 이 모든 오류의 행태들을 내 인생의 다른 범주에서도 행하고 있다는 걸 더 선명히 깨달았다. 그래서 독서와 기록이 필요하다. 독서와 기록을 통해 되새김질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분명히 내가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기사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무언가를 능숙하게 잘 하는 것은 오류를 줄여나가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오류투성이 인간임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잘못 알고 있다. 막연한 추측이나 정확하지 않은 지식, 선호를 통해 그것이 맞고 옳다고 인지한다. 또한 우리는 정확히 인지한 후에도 습관이나 취향에 따라 비합리적으로 판단한다. 무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행동의 반복도 무척 중요하다. 경력이 오래될수록 그 일에 능숙해짐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가끔 행동을 멈추고 내 행동을 분석하고 기록하며 오류를 바로잡아나가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것이 기업에서는 혁신적인 CEO가 하는 일일 것이다. 무턱대고 방향도 없이 그저 열심히 일만 하는 조직을 바로잡는 일 말이다.


이 일을 하면서 달라진 게 또 몇 가지 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귀가할 때마다 정말 진심으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음을 신께 감사하게 된다.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때우고 실내에서 생활하며 직장 생활을 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감사다. 또한 실시간으로 돈을 버니 카드 지출의 패턴 등 내 재정 상태와 소비 패턴을 더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열심히 일하면 이전 직장보다는 좀 더 버는 대신 퇴직금 등의 복지가 일절 없으니 그야말로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자영업이다. 그래서 통장에 잠깐 찍혔다가 사라지는 월급이라는 주체를 통한 막연한 대책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재정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내가 저지른 빚투, 이전부터 있었고 구체적인 상환 계획도 없던 대출금, 겁 없이 툭툭 쓰던 소비생활 등이 더 리얼한 현실로 다가온다. 한 끼 외식을 하려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야 하니 말이다.


어쨌든 이 일도 인생을 많이 배우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형태의 일은 아니다. 돈도 벌며 자부심도 느낄 수 있는 일이 최고의 일이라 생각한다. 기업을 운영하든, 소규모 장사를 하든, 예술가로 활동하든, 귀촌 후 시골살이를 하든 행복하게 삶을 가꾸는 사람들의 일은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이 일은 자부심은 느낄 수 없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내 삶에 책임을 지기 위해 당장 할 수 있고 할 만한 일이라 하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일이고, 가능한 한 짧은 기간만 하고 싶다.


나는 몸이 아주 편한, 그래서 한편으로는 눈치 속에서 무기력한 직장을 스스로 탈출해서 지금 이 일에 적응하고 있다. 한편으론 잘못한 선택이고, 한편으론 잘한 선택이다. 결국 나 하기에 달렸다.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나는 글과 음악이라는 내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단한 각오와 원대한 꿈보다는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작은 오류들을 부지런히 개선하고, 그것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는 재미로 사는 법을 알아가는 게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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