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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pr 18. 2023

조급하고 허황된 꿈의 초라하고 허무한 종말


딱 2년. 재작년 4월에 주식을 조금 산 것이 오르면서 겁도 없이 대출이란 대출은 다 받아서 주식을 더 샀다. 2년이 지난 지금 주식은 반 토막 났고, 그 2년 동안 오른 금리 때문에 은행과 카드사의 배만 팅팅 불려주고 말았다. 나는 음악에 바쳐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그들에게 갖다 바쳤다. 노예처럼 열심히 벌어서 말이다.


오늘 그 반 토막 난 주식들을 모두 정리했다. 더 이상 고금리의 이자를 감당하며 억지로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게 무의미했다. 이건 자산도 아니고, 투자도 아닌 그저 요행을 바라는 투기에 불과하다는 걸 실생활과 책을 통해 깨달았다. 자본주의 (주식) 시장은 잔인하고 변화무쌍하며, 그야말로 예측불허라 나 같은 순진한 소시민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덤빌 분야가 아니란 걸 절실히 느꼈다. 대출이자가 며칠만 밀려도 독촉 문자와 전화를 할 게 뻔한 그들은, 빌린 돈을 다 갚아도 '그동안 빚 갚느라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다. 당연하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금융은 피도, 눈물도 없으니까.


2~3년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음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바라는 허무맹랑한 욕심으로 시작한 주식 투자. 그 끝은 너무 허무하고 씁쓸하다. 빚 갚느라 마음고생, 몸 고생. 대출 연장하느라 자존감 극 하락. 그래봤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고, 내 재정 상태는 당연히 플러스가 아니라 그저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정도다. 그나마 카드빚이지만 금리가 10% 넘는 대출은 받지 않았기에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게 천만다행이다.(그래도 아직 소액이 남았다)


『아버지의 가계부』에서 저자 제윤경이 말하듯 적은 돈이라도 성실히 벌고, 소중히 여기며, 차근차근 절약하고 모으는 습관부터 만들어야겠다. 돈은 행복을 위해서 많아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게 아니라, 없거나 모자라면(특히, 빚이 있으면) 다른 삶의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에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구나. 정말로.


빚 없이 배불러 먹고, 따뜻하게 잘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가계부』는 언론과 이웃이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통한 대박 환상만 부추기다 보니, 정당한 노동을 통한 소박하지만 소중한, 적은 돈을 하찮게 여기는 세태가 만연하다고 한탄한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 안 하면 바보! 이런 분위기.


음악만 배우기에도 벅찬데 경제, 주식을 배울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당분간 - 꽤 긴 - 그저 소박하게 아끼고, 성실히 저축하면서 『원씽』에서 말하는 대로 한 가지에 집중하려 한다. 내 인생을 변화시켜 줄 단 한 가지에.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를 읽어보면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2022 한일월드컵 등 국가적인 행사에서 음악을 도맡아 하고, 국악의 대중화에 큰 공을 세웠으며, 그 외 많은 영화음악과 가요를 작곡한 김수철이 결코 천재여서 그 많은 업적을 이룬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거의 강박적인 정도로 매일 한 기타 연습, 작곡 공부, 우리 소리에 대한 애정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그는 노력 천재였다.


돈(부자)이든, 음악이든 내실 없이 조급하고 허황된 꿈은 결국 마이너스로 귀결된다. 오래전에 직장인밴드를 할 당시 제법 실력이 있다고 소문난 다른 직밴이 있었다. 우리보다는 당연히 연주를 잘했다. 그 밴드의 기타리스트는 록 음악 마니아라면 당연히 한 번쯤은 멋들어지게 치고 싶어 하는 오지 오스본의 'Mr. Crowley'을 연주할 줄 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연주를 들어보니 좀 - 사실은 대단히 - 실망이었다. 분명히 그 곡을 연주하는 건 맞는데, 박자도 안 맞고, 그루브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리듬이 계속 어긋나고 깨졌기 때문이리라. 수년이 흘러서 우리 지역 밴드 경연 대회에 그분이 또 다른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나오셨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역시 뭔가 있어 보이는 외국곡을 선곡해서 무대에 나왔다. 그런데 거의 10년이 지났는데 그분의 연주는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기타로 뭔가 멋있는 걸 보여주겠다는 욕심만 보일 뿐, 박자도 리듬도 다 나가도, 그저 후린다는 느낌밖에 없는 속주였다. 아무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 그 밴드는 결국 수상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좀 더 쉬운 곡을 리듬에 딱딱 맞게 그루브를 타면서 연주했더라며 훨씬 좋았을 것이다.


김수철(과 같은 대가들)의 음악 세계와 업적이 거대하다 한들, 하찮은 아마추어라고 내가 기죽을 필요는 없다. 나는 좀 더 쉬운 곡을 리듬에 딱딱 맞게 그루브를 타면서 연주하듯이... 음악을 공부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삶을 살면 된다. 엄청난 부자라야 행복한 게 아니듯 음악적으로 대성해야만 진정한 음악가, 예술가인 것은 아니다.




예술은 삶 위에 있지 아니하고, 삶이 없는 예술은 의미가 없다. 삶이란 말 그대로 '살아있음'이다. 소시민이든, 대가든 '살아있음'에는 차이가 없다. 예술은 삶 속에 있고, 예술 속에는 삶이 있다. 삶이 곧 예술이다. 당신과 나는 예술적으로 - 진심을 담은 요리같은 - 삶을 살고 있는가? 조급하고 허황된 꿈을 좇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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