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새 Apr 24. 2023

엄마도귀찮았을 것이고아내도힘들었을것이고아이도싫었을것이다


살기 싫을 때가 있다. 우울할 때가 있다. 만사가 귀찮을 때가 있다. 사실! 디폴트의 나는, 나의 감정 상태는 여기에 더 가깝다고 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이런 마음이 들면 짜증이 나고, 무기력하고,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다. 50년을 살아보니 살기 싫고, 우울하고, 만사가 귀찮은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멋진 철학책을 읽고, 성경을 읽고,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해도 이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닐 - 성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종종, 혹은 자주 들지만 누구는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진 반면, 누군가는 그 감정에 휩쓸린다.


태생이 게으르고, 한량인 나는 청소, 설거지 등등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너무 귀찮다. 심지어, 솔직히 돈 버는 것도 귀찮다. 대한민국의 남편과 아버지로서 돌팔매질 당할 소리지만.


억지로 청소를 하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나를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귀찮은 일을 많이 하셨을까',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마누라는 고집불통 나를 만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장성한 아들의 의젓한 행동들을 보노라면 '꼰대 아버지의 독불장군 훈육방식에 내 아들들은 얼마나 싫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든다. 어머니는 연로하시고, 아내는 갱년기며, 아들들은 훌쩍 커버린 지금에서야.


반성 모드로 산다고 해서 지금 내가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효자로서, 자상한 남편으로서, 따뜻한 아버지로서 그렇게 잘 사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이제는 군말 안 하고 청소할 레벨까진 겨우 올라온 것 같다. 청소를 빨리 끝내고 더 기쁜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조급증, 빨리빨리 한국병. 그런 것보다 '내가 사는 집이니까. 나와 내 동반자 모두가 소중하니까 깨끗한 환경이 필요하지' 이런 마음은 청소를 천천히 하게 한다. 적어도 차분히 청소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잘해도 결국 1~2할을 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 1~2할을 지키는 건 상당히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지간에 이 1~2할마저 깨져버리면 금이 간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다양한 인생을 경험했다고, 나이가 많다고 타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은 천차만별이고, 사람의 개성은 정말 창조적이기 때문에.


지금 힘들고 짜증이 나고 무기력해진다면 조용히 반성 모드로 진입해 보는 건 어떨까. 이렇게 덜 되먹은 내가 지금껏 살아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 가족과 타인, 가깝고 먼 사람들의 희생 - 귀찮음과 힘듦과 싫음 - 이 있었는가를 떠올리면서. 그러니 나도 이 정도 힘듦은 충분히 감내해야 하고, 감내할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야 적어도 '인간'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경상도에서 부부 싸움을 할 때 이런 소리를 잘 한다. "니가 인간이가!" 스스로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은 되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조급하고 허황된 꿈의 초라하고 허무한 종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