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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Aug 02. 2023

강력한 의지 말고 작은 수고와 육체를 부여하라


내 어휘력이 짧기도 하고, 어떤 개념이나 추상적인 것에 부여하는 물질적인 것으로서 비유적으로 '육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 쓰기로 한다.


육체 : 구체적인 물체로서 사람의 몸(네이버 국어사전)


여기서 내가 말하는 '육체'의 의미는 '구체적인 물체로서 몸'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 공표하는 것에는 실현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다들 아실 것이다. '하겠다'는 생각은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을 하면 일단 공기 진동이 되어 내 고막을 자극한다.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입술과 혀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것부터 수고를 통한 1차 자극의 시작이다. 또 내가 한 말의 청자가 되어 스스로 듣는다.


기록하면 생각은 '글'이라는 육체를 입는다. 시각화되고, 나의 피조물로서 세상에 탄생하고 존재하게 된다. 공표하면 내 말과 글에 대해 타인의 시각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시각화의 범주가 매우 넓어진다. 말하자면 공개된 몸이 된다.


이번에 <악기를 포기하는 당신을 위한 심폐소생술>이란 제목으로 Udemy에서 지원해 주는 온라인 강의도 찍고, 경남평생교육진흥원과 연계하여 오프라인 강의도 개설하게 되었다.


오픈 전 강의 영상을 모니터링하면서 결국 내가 열을 올려 전달하려는 내용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강력한 의지력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껴야 매일매일 연습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의지'라는 문장 자체에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참고 한다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한 내 강의 내용 일부가 귓가에 계속 맴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악기 연습은 거의 평생을 해야 하는데 이걸 억지로 할 순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얕은 마음으로는 장기간 지속은 불가능하다. 영상 속의 나는 초보 강사라 중언부언이 많고, 눈도 자주 깜박이는 등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최소한 나 자신에게 '악기 연습의 지속성'에 대해 확언을 하는 - 육체를 부여하는 - 효과는 있었다. 즉, '나'라는 수강생에게 확실히 강의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말이다. 설령 아무도 수강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 그러면 좀 슬프겠지만 ㅎㅎ - 보람이 없는 헛수고는 아니었다.


이번 달 수입이 괜찮고, 지출이 작아서 내 많은 빚 중에 일부를 갚았다. 대충 계산해 보니 일정 금액을 매달 갚으면 5년 정도면 빚에서 완전히 탈출할 수 있겠다 싶다. 물론 지금 정도의 수입이 5년간 이어진다는 가정 하에서. 만약 중간에 내가 시도하는 새로운 일들이 잘 풀린다면 더 빨리 갚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 5년이란 세월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5년 동안 빚을 갚는다는 건 너무 갑갑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 억눌려서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빚은 안 좋은 존재지만, 빚을 갚는 것은 좋은 일,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5년은 10년이나 50년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하루는 후딱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보면 5년은 참 짧은 기간이다. 5년 후에도 빚이 남아있는 것보다는 5년동안 빚을 갚는 게 낫지 않은가? 결국 관점 차이다.


내 수고(노동)로 번 돈으로 빚을 갚아나가는 것도 빚 갚기에 일종의 육체를 부여하는 일이다. 대출 돌려막기나 매달 급여에서 얼마가 빠져나가는지도 모르고 상환이 되는 것에 비해, 한 달에 100만 원이란 금액을 정하고 그것을 (수동으로) 갚아나가는 것은 추상적이고 멀게만 느껴지는 '빚 갚기'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어제 아내와 게릴라 여행을 다녀왔다. 해질 때 맞춰서 광양 진월면 망덕포구란 곳에 갔다. 라이더를 하면서 생긴 많은 천 원짜리 지폐들을 소진하기 위해서 밥값으로 현금을 챙겨갔다. 1인분 16000원의 물회, 여섯 콜을 뛰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20대 어린 시절에 직장을 찾아온 카드사 직원의 유혹에 넘어가 카드를 발급받은 이후 줄기차게 카드의 노예로 살아온 내가 실로 오랜만에 현금을 쓰는 순간이었다. 1000원짜리를 많이 주면 싫어할까 하는 우려와 달리 식당 직원은 너무너무 반가워하면서 환호를 지르는 게 아닌가? 우리에겐 이런 게 필요하다며 다음에 올 땐 5만 원어치 1000원권을 가져오라 한다.


나는 다소 당황하면서도 이 상황이 너무 재밌었다. '여긴 시골이라 은행도 없고, 잔돈이 귀하구나.' 나는 육체를 가진 돈에 대해 그 강렬함을 느꼈다. 재정 고수들이 카드를 잘라 버린다고 하는 이유. 절약을 위해서이겠지만, 현금을 쓰는 것 자체에 쾌감이 있었다. 지불을 뒤로 미루지 않고, 내게 속해 있던 육체를 가진 돈이 우리가 맛있게 먹은 음식의 대가로 저쪽으로 건너가는 순간이었다. 지불을 뒤로 미루게 함으로서 소비를 부추기는 아주 지능적이고 교활하면서도 겉으로는 신사인 척하는 - 그런 인간도 있지 않나 - 카드가 아닌, 꼬깃꼬깃한 육체의 현금이 뒤끝 1도 없이 저쪽으로 시원하게 건너가는 순간. 나는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아주 시원하고 맛있게 물회를 먹었으니까. 명세서란 이름으로 육체 없는 숫자(돈)가 한 달 후 나를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현금을 사용하려면 챙겨서 주머니에 잘 보관하는 수고, 액수가 맞는지 세어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런 수고가 바로 인생이 아닌가. 참 인생은 시각과 촉각이다. 물론 청각도. 감옥에 갇혀서 아무리 너른 들판과 바다를 상상한들 그것이 매일 마음을 탁 트이게 해 줄 수 있나. 그럴 수가 없어서 우리는 도시라는 감옥을 탈출해서 여행을 떠난다. 손도 잡아볼 수 없는 연인과 몇 년째 카톡과 통화로만 연애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연애일까.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는 강력한 의지 말고 추상적인 생각, 아직은 실체가 아닌 생각에 육체를 입히는 매일의 수고가 필요하다. 육체를 입히는 순간 그것은 점점 내 편이 된다. 나는 아군을 더욱 확보한 장수가 된다.


육체, 그것은 이상형과 직접 대화하고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으며 고단한 트래킹을 하는 현실이다. 육체를 입히는 것은 신을 닮은 창조 행위다. 삶의 현찰을 즐겁게 나누는 행위다.


돈이 저절로 열리는 돈나무, 돈이 자동 유입되는 파이프라인도 좋지만 그것을 꿈꾸고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시각과 촉각, 수고와 육체화의 강렬함을 느껴보자. 그것이 진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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