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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l 02. 2023

아직도 나는 이기적인 초보 여행자

feat. 담양


둘이 함께 숲길을 걸을 때, 아내가 앞장서서 걷고 저는 쫓아갑니다. 걸음이 느린 사람이 앞에서 가는 편이 좋습니다. 산행에 익숙한 사람이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으면 따라오는 사람이 쉽게 지칩니다. 사이가 벌어지면 앞서가던 사람이 잠시 서서 기다리는데, 뒷사람이 따라잡으면 금세 다시 출발해버리죠. 즉 산을 잘 타는 사람은 자신의 속도대로 산을 오르며 휴식도 자주 취하는데요, 산을 못 타는 사람은 잘 타는 사람 속도에 맞추느라 힘들고 제대로 쉬지 못해서 더 힘들어요.


커플 산행을 할 때는 미숙한 사람이 앞장을 서고, 뒤에 가는 사람은 적당히 간격을 유지하면서 따라가는 편이 좋습니다. 뒤에 쫒아가는 게 체력 소모가 심하거든요. 그리고 한라산이나 사려니숲길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길만 따라가면 되니까 초보자가 혼자 가도 길 찾기에 부담이 없어요. 갈림길이 나오면 잠시 쉬면서 뒷사람이 쫓아오기를 기다리면 되니까요. 도보 여행이나 자전거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미숙한 사람이 앞장서고 능숙한 사람은 쫓아갑니다.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을 배려하는 곳이 좋은 공동체인 것처럼.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p.197



라이더 일의 단점이자 장점은 주말에 못 쉬는 대신 평일에 쉴 수 있다는 점이다. 평일은 교통을 포함한 모든 것이 널널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여유있게 즐길 수 있다. 6월 28일, 29일. 아내가 1박 2일로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장마철이라 걱정이 돼서 넌지시 물어봤지만 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그동안 직장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풀어야 한단다. 나는 아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이틀간의 수입을 포기하고 저 멀리 전북 부안의 휴양림을 예약했다. 지나가는 길에 담양이 있는데, 담양은 한 번도 안 가본 터라 담양을 구경하고, 부안에서 자면 되겠지 싶었다.


첫째 날은 비가 오지 않고, 덮지도 않아 오히려 날을 잘 골랐나 싶었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은 나무들은 훌륭했으나 길이 정돈된 느낌이 들지 않아 별 감흥이 없었다. 담양호 역시 호수를 두르는 산책로가 없어서(제방에서 보니 없는 줄 알았다. 용마루길의 존재를 모름) 실망이었다. 세 번째 선택한 곳이 금성산성. 산성도 보고, 담양군의 전망도 보려고...


초입부터 아내가 싫어했다. 아내는 산 타는 걸 무척 싫어한다. 나는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나오겠지'하는 생각으로 아내의 불평을 뒤로하고 계속 걸었다. 중간쯤 왔을까. 한 스님이 장마에 대비하여 물골을 틔우고 계셨다. 스님께 물어보니 산성까지 길이 그렇게 험하지 않고 한 15~20분만 올라가면 된단다. 아내는 힘들어서 올라가지 않고 기다릴 테니 혼자 갔다 오란다. 나는 산에 여자 혼자 있는 건 위험하므로 같이 가야 한다고 설득해서 데리고 간다. 내가 한참 앞서 걷고, 아내는 엄청 힘들어하면서 겨우겨우 멀찌감치 따라온다.


막상 오르고 보니 스님의 말씀은 자기 기준이었다. 등산하러 온 게 아닌 우리로서는 상당히 가파르고 긴 산길이었다. 아내는 계속 힘들어하며 투덜거린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지' 하면서 계속 오른다. 드디어 정상. 과연 장관이다. 사람이 산꼭대기에 이걸 순 노동으로 다 쌓았다니... 그 노고와 정성과 인내와 의지에 감탄한다.


금성산성
올려다 본 담양의 대나무숲(왕죽)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쉬면서 즐기려 했던 아내는 이때 벌써 체력이 고갈되고, 산통이 다 깨져버렸다.


용마루길 다리


여행을 떠나기 전에 너무 많은 정보를 알아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도 어리석지만, 아무런 정보도 알아보지 않는 것도 여행을 혼란에 빠트린다. 이번에 겪어보니 그렇다. 산책하기 좋은 용마루길이 있는 줄 알았다면 굳이 힘든 금성산성을 올라가진 않았을 것이다.


이튿날은 폭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실내로 피신했다. 집으로 직행하기에는 길도 너무 멀어서 위험할뿐더러 하루를 그냥 포기하는 거라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주로 박물관으로 갔다. 탈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정말정말 신께 감사드린다. 우리 부부는 이번에 정말 철딱서니의 정점을 찍었다. 이런 시기에 여행이라니. 집에 와서 보니 우리가 다닌 전남, 전북이 특히 호우주의보에 경보에 난리도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상대방 과실로 차까지 파손돼서 짜증이 아주 제대로 났다. 상대방 보험의 자차로 해결하면 될 상황이라 보험사 직원과 통화하고 사진 찍고 현장을 떠나도 되는데, 사고를 낸 노인이 굳이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오기를 원해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휴양림이 외지라 시내에서 오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나와 아내가 치료비를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차를 파손한 사람이 시간까지 뺏는구나' 한숨에, 짜증에... 결국 보험사 직원이 왔고, 결론은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노인은 아마 자기 과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해서 보험사 직원을 기다린 것 같았다.


겨우 상황이 종결되고, 현장을 떠나자마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꼬인다 꼬여. 오늘 정말 제대로 꼬이는구나' 폭우를 피해 피신할 장소로 택했던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하필 깊고 깊은 산중으로 가는 산길이었다. 토사가 흘러나와 있고, 도로가 침수돼 운전하면서 정말 겁이 났다. 고립되는 거 아닌가 해서...


돌아와서 며칠째 읽고 있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의 후반부를 읽어보니 위의 구절이 있었다. 또 좋은 여행은 관광과 휴양이 절반으로 섞인 여행이라는 구절도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와 상황 속에서 멘붕에 빠졌던 나, 우울함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던 나, 아내를 뒤따르게 하고 앞서가던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짜증 잘 내고, 어쩔 줄 모르는 초보 여행자였다.


무작정 떠나는 게 여행이 아니다. 여행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과 동행자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떠나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다.


많은 배울 거리,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이번 여행이었다. 굳이 떠나야 한다는 아내에게 날짜 변경 등의 타협안을 제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내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여행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고, 성의 없이 몸뚱아리만 동행한 나를 반성한다. 이런 양보는 아내를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니다.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숙소로 휴양림만을 고집했던 고정 관념도 좀 내려놔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여행은 선택과 집중이라고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의 저자 김민식 PD는 말한다. 권역을 넓게 잡는 여행은 체력이 부실한 우리 부부에게는 힘겹고 지치는 일정이다. 나는 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위해 여행할 곳과 숙박할 곳을 같은 지역에 정하지 않았었는데, 좀 더 휴양 위주의 여행이라면 탐방하기로 마음먹은 지역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그래야 사서 고생을 덜하고 시간을 아낀다. 또 그 지역을 비교적 깊이, 오래, 제대로 볼 수 있다.


현명하고 기분 좋은 여행의 지혜도 역시 책에서 찾아야겠다. 집을 벗어난다고 무조건 즐거운 여행이 되지는 않는다. 우선 여행 선배들의 주옥같은 조언들을 귀담아듣고, 메모해둬야겠다.


둘째날 폭우 소강상태에 찾아갔던 내장산조각공원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걸린 사진(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하는 의병들을 재판도 없이 저렇게 현장에서 처형했다고 한다. 가슴아픈 우리의 역사와 선조들의 희생)


실패는 역시 성공의 어머니인가? 실패할 당시는 속이 쓰리고 마음이 좋지 않지만, 이후에는 나를 돌아보고 개선점을 찾아보게 된다. yes24에서 여행과 짜증에 관한 책을 검색해서 메모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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