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卑怯)하다 : 떳떳하지 못하고 겁이 많다.
나는 10대 후반에 사회에 나와서 나름 공장에도 다니고, 노가다도 해보고 온갖 직업을 전전했기 때문에 스스로 독립심과 생활력이 강하다고 믿었다. 또 어디 가서 할 말 못 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비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못하는 것은 내가 성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많이 못 배운 덕에 원치 않는 일들만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작곡을 처음 업로드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작곡을 시작한 지 7년째다. 취미가 아닌 영역으로 음악을 계속하는 건 무척 힘들다. 대중의 반응도, 돈도 따라오지 않는 음악을 혼자서 공부해가며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여 만든 곡을 업로드했는데 반응이 거의 없을 때, 가족이나 지인의 단톡방에 유튜브 링크를 올리는 것도 구걸 같아서 그만하고 싶을 때, 음악을 하면서 느끼는 고충을 함께 나눌 친구가 없어서 외로울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러다가 가뭄에 콩 나듯 곡(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구독자가 제법 늘 때가 있는데 이럴 땐 당연히 에너지가 마구 생기고 신곡 작업을 하고 싶은 의욕도 새롭게 생긴다.
이 두 가지 상태일 때의 나를 관찰하면서 첫 번째 상태일 때 내가 퇴행적 행동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퇴행적 행동이란 과식과 과음, 넷플릭스나 보면서 시간 때우기, 유튜브 뒤적거리다 자정 넘어 자기, 만사가 귀찮아 신곡 작업 포기하기, 직장생활과 신세 한탄하기, 자기 비하 등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부모가 이혼을 해서 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내 엄마는 계모이고, 친구들의 엄마만큼 따뜻하게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이 부끄럽다는 열등감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중2 때부터 사춘기가 왔는데, 공부를 거의 안 해서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고, 실업계가 적성에 맞지 않아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자퇴하고, 인문계를 가기 위해 집에서 재수를 했다. 그 1년의 시간에도 나는 스스로를 패배자로 낙인찍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다 학교에 있는데, 나는 재수랍시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세상으로 나가는 게 두렵고 싫어서 대인기피증까지 왔었다.
지금, 나이가 들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스스로가 만든 구덩이에 숨어 들어가는 도피였다. 세상과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비겁한 생각과 행동이었다. 부모의 이혼은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엄마가 계모란 사실을 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실업계가 적성에 안 맞으면 자퇴할 수도 있는 거고, 또 거기서 새로운 계획에 맞춰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나는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테이프를 잔뜩 빌려와서는 밤새 그걸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낮에는 자면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십여 년 전 야심 차게 시작한 푸드트럭도 여러 여건이 악화되자 너무나 쉽고 무기력하게 의지가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건 아마도 음식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보다는 돈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는 수단으로서만 푸드트럭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음악도 부모의 이혼이나 푸트트럭의 여건 악화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하나의 벽이다. 수많은 실력 있는 작곡가, 뮤지션, 인맥, 젊음, 학력, 수도권... 그 어디에도 나는 속하지 못한다.
이제는 더 이상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을 넘게 비겁하게 살았다면 이제는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 작곡한다고 몇 년 끄적거려 보고는 '아, 난 실력이 없네, 재능이 없네, 인맥이 없네, 고음이 안 올라가네, 운이 안 따라주네, 나이가 많네, 음악 공부가 어렵네, 콘텐츠 홍수시대라 안되네, 유튜브 레드오션이라 힘드네' 하면서 슬그머니 도망치고 싶지 않다. 결과와 성과는 최선을 다해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 최선을 다한다고 할 때 그 '최선'의 기준은 어디쯤일까? 요리를 보면 답이 나온다. 웬만큼 재료와 정성과 기술과 시간을 쏟아붓지 않으면 명품요리가 탄생하지 않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미슐랭까지 안 가더라도 동네 맛집만 되려고 해도 실력과 정성과 시간을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꽤 오랫동안 비겁하게 살아왔다는 자각은 큰 깨달음이다. 그건 직설적인 성격이나 생활력과는 상관없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얼마나 당당히 세상과 맞섰느냐의 문제다. 세상살이는 죽지 않고서야 피할 길이 없다. 이 길이 아니면 저 길을 가야 한다. 엉덩이를 쳐들고 고개만 이불 속에 파묻는다고 숨어지는 게 아니다.
주영훈, 최백호, 김범룡, 탁재훈 등등 데뷔 스토리를 들어 보면 교과서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잘 된 케이스는 하나도 없다. 다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다. 결국 씨를 계속 뿌리고 그 세계에 오래 있어야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는 운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시골집에는 어릴 때부터 사료를 주던 마당냥이 두 마리가 있다. 겨울이고 회사일도 바쁘고 해서 시골집을 자주 비우다 보니 한 마리(갈색둥이)는 거의 뒷집 할머니 냥이가 되어서 가끔 우리 집에 오고, 잠만 자러 오는 하숙생이 되었다. 나머지 한 마리(흰둥이)도 집을 비울 때는 뒷집 할머니한테 밥 동냥을 하겠지만 내가 오면 어김없이 우리 집에 온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흰둥이한테 사료든 츄르든 더 챙겨주게 된다. 이걸 보면서 나도 음악계 안에 오래 버티고 있어야 뭐라도 얻어먹겠구나 싶었다. 갈색둥이처럼 잘 안 풀린다고 본거지를 벗어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100세 시대라 하지만 여전히 70살부터는 언제 갈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나에게는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그러니까 더더욱 이제는 도망 다니지 말아야겠다.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이 길을 꿋꿋이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