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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Oct 04. 2020

기획사 100군데에 데모곡 보내기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내가 최근에 발매한 S곡은 사실 공모전에 1차로 떨어지고, 2차로 남자 트로트 가수들에게 팔려다가 실패한 곡이다. 나는 이 곡을 기획사 한 50군데에 보낸 줄 알았는데, 정확히 세어보니 39군데였다.  내 목소리로 발매한 후 '여가수가 애절하게 부르면 어울릴 것 같다'는 지인들의 의견이 제법 있어서 여가수에게도 보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다. S곡의 멜론 순위가 같은 날 발매한 조혜련의 신곡과 평균 2000위 차이가 나면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위 상승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또 가수들의 연락처를 찾아내는 일은 어지간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발매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 예상대로 S곡의 순위가 광탈하기 시작했다. 평균 4000위였던 순위가 10000위권 밖으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무명가수의 무력함을 실감하면서, 데모곡을 기획사에 다시 보내야 하는 절박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곡이 아무리 좋아도 가수가 무명이거나 실력이 쉬원찮으면 빛을 볼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5일간의 추석 연휴를 거의 다 기획사에 S곡 보내기에 썼다. 재밌는 경험을 했고, 사례를 분류해 본다.


1. 90% 정도가 여기에 해당. 아무 응답이 없다.


2. 5%. 의례적인 답변이 온다. '감사합니다. 들어보겠습니다' 정도. 그런데 이 정도도 입봉을 못한 초짜 작곡가에게는 엄청 친절한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5%에 해당하는 실 사례>


a. 소속된 가수가 다수의 TV프로그램에 출연. 관계자는 음악을 전공. (데모곡은 거의 99% 매니저나 소속사에 보낸다.) 곡이 좋다며 '신곡이 나왔지만, 곡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니 참고해 보겠다'라는 피드백. 전공자가 곡을 칭찬해 주는 것은 초짜 작곡가에겐 엄~~~청 힘이 됨.


b. 소속된 가수 말고 다른 소속사 가수가 어울리겠다며 가수의 이름을 콕 집어서 추천.


c. 깨톡으로 먼저 나에게 명함을 건넨다. 작업실이 어딘지, 가이드는 직접 했는지 물어본다. 노래가 좋다며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d. '빈말이 아니고, 곡은 너무 좋다' 그러나 전문 프로듀서가 있고, 이미 미래의 곡까지 다 받아놓았단다.


e. 소속 가수가 10명이 넘는 대형 기획사다. 소속 가수들이 다 노래 실력이 장난 아니다. 한 가수를 콕 집기가 애매해서 두어 명의 가수를 언급하며 곡을 보냈다. 직접 전화가 걸려온다. 나이와 고향을 물어본다. 곡의 채택 여부는 회사에 들어가서 상의를 해봐야 한단다. 앞으로 곡을 만들면 계속 보내라 하신다. 채택 여부를 떠나서 신곡 보낼 큰 시장을 확보한 셈이다.^^


100군데의 기획사에 데모곡을 보내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역시 동기부여와 자신감이다.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생계에만 발과 마음이 묶여 있던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일들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소속사에 데모곡을 보내고, 응답까지 받다니...


다분히 주관적으로 보건대 곡의 대중적 성공 여부는 감성 40%, 음악적 스킬 30%, 운 30%이다. 나는 후하게 쳐서 감성 27%, 스킬 9%로 합계 36% 정도밖에 밑천이 없다. 현재는 그렇다. 그러나 운은 많이 대할수록 확률이 높아진다. 뽀대 나게 곡이 팔리면 이 글을 쓸까 하다가 그것과 무관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쓴다.


어젯밤에 드디어 100군데를 채웠다. 그런데, 찾으면 찾을수록 보낼 기획사가 더 나온다. 좀 쉬다가 안 팔리면 다시 또 보내봐야겠다. 물론 신곡도 계속 만들 것이다.


이런 경험은 정말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누가 디테일하게 나에게 이런 걸 가르쳐 주겠나? 그래서 도전과 그 도전으로 인한 경험이 정말 중요한가 보다.



'총알이 없으면 전쟁터에 나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총알 두세 개만 가지고 나가서, 총알을 얻어가며 싸우는 방법도 있다. 이건 정말 직접 경험해봐야 아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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