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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Sep 23. 2020

감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요!

붙는 분, 떨어지는 놈

큰아들이 지방직 9급 공무원에 최종 합격한 날, 나는 진주가요제 예선에서 탈락했다. 자꾸 떨어지는 게 자랑도 아닌데, <보통사람들> 공저자 중 한 분이 또 이걸 글로 남겨보라 하신다. 하긴 요즘은 자랑거리가 아닌 이야기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개방된 시대이니...


작곡만 해서 고정적인 월수입을 보장받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생각한 대안이 '지역 가수가 되자'였다. '작곡하면서 행사도 다니면 가수들과 인맥도 넓힐 수 있고, 그럼 곡을 팔 수 있는 가능성도 더 높아지겠지? 영탁처럼'  에릭 클랩튼이 그런 부분에서 내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작곡, 보컬, 연주를 혼자서 다 하면서도 장수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지역 가수'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노래 못하는 가수들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용기를 냈다. '그러면 나 정도도 지역 가수는 될 수 있겠지?' 내가 임영웅, 김호중 급이 아니란 것은 당연히 잘 알고 있다. '타고난 성량과 파워풀한 고음'이라는 기본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어째됐건 이런 생각 끝에 'KBS 전국트롯체전', '아침마당', '진주가요제'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줄줄이 탈락. 브런치 작가가 되기까지도 여덟 번을 떨어졌으니 이건 별 일이 아닌 거다. 그렇지만 도전을 할 때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쓰고, 용쓴다고 읽는다) 하므로, 떨어진 직후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떨어진 추억들을 떠올려 봤다. 과거부터... 현대기프트카에서 공짜로 트럭과 사업자금을 주는 공모 사업에 1차 합격(전국에서 몇 명 안 뽑았는데) -, 서울까지 면접 보러 갔다가 떨어졌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공부 제일 잘하는 여학생들이 몰린다는 교행직 말고 좀 커트라인이 낮은 직렬에 응시했으면 붙었을 텐데), 공기업도 NCS까지 붙었는데, 양복 입고 그 멀고 나름 으리으리한 공기업 본사까지 가서 본 면접에서 떨어졌다. CJ ENM에서 개최한 작곡 공모전에 떨어지고, 그 외 취업 과정에서는 무수히 떨어졌으리라. 괄호 속 내용처럼 마음속엔 언제나 변명도 함께 있다.


내가 뻘짓을 한다고 싫어하는 엄마와 형 - 엄마는 지금은 조금 나아지셨지만 - 은 손자와 조카의 공무원 합격에는 쌍수를 들고 기뻐한다. 나는 떨어진 '놈'이 되고, 내 아들은 붙은 '분'이 되었다.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능력이 없어서 지금 음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므로 나름 당당하다. 나는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덕분에 마눌님도 고생하지만 이건 다음번에 주제를 삼아 다시 다루겠다. 사실 공무원 생활도 고난이다. 악성 또라이 민원인이 있지 않나? 꼰대 상사도 있을 테고.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겠나?


자꾸 떨어지는 것에 대한 해답은 이미 알고 있고, 나와 있다. Just do it! 낚시도 자꾸 고기를 잡아야겠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히면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고기가 잡히는 황금시간대에 애먼 곳에서 낚시를 하게 돼 결국은 수확이 없게 된다. 운은 하늘에 맡기고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 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더 뭐가 있겠나? 분석이나 예측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운칠기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자기 계발서는 별로 읽기가 싫어진다. 


쓸데없는 분석은 하고 있다. 같은 날 싱글을 발매한 연예인 조혜련과,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에 앨범 발매 기사를 낼 정도의 무명 아닌 무명 가수와, 완전 가내수공업 무명인 나의 멜론 순위를 엑셀 파일을 만들어 날마다 비교하고 있다. 평균을 내보면 조혜련(2000위) - 무명 아닌 무명 가수(3000위) - 나(4000위)다. 무명의 특성상 한번 떨어지면 광탈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오르락내리락하며 버티고 있다. 팬덤이 있는 연예인과 매스컴을 탄 무명과의 대결(?)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건 정산표를 받아보면 알겠지.


'붙는 분'이 되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건 너무 자본주의에 물든 모습 같아서 별루다. 음악 할 수 있는 걸 감사하고, 지지해 주는 아내가 있는 걸 감사하고, 작은 결실들에 감사하련다. 낚시 가서 월척도 좋지만 붕애(붕어 애기)도 얼마나 이쁘고 귀여운데...


인생에는 관계가 참 중요하다.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떨어짐'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떨어짐'을 구박하지 말고, '나'를 자학하지 않는 것. 나를 자학하는 것도 폭력이고, 그 폭력이 가족에게 무심결에 전달될 수도 있다. 먼저 나를 이해해야 가족도 이해하고 남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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