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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15. 2020

소통을 생각해 보는 나이

나이 들어 좋은 점

최근에 사소한 오해로 서로 서운해 있던 친구 A를 만나고 왔다. A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를 배려해서 푸짐하게 해산물을 대접했고, 나는 오랜만에 정말 만족스럽게 먹고 왔다. 중간에 다른 친구 B가 우리를 화해시키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A는 내가 추측했던 게 아닌 다른 지점에서 내게 섭섭해하고 있었다. A의 부탁에 대해 내 딴에는 짧은 시간 많은 고민 끝에 말로 거절하기 미안하고 구차해서 문자로 거절을 했는데, A는 전화로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거절을 하면 자기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자기 부탁을 오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달랑 문자 한 통으로 거절한 것이 매우 서운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라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마음을 풀었다.


친구들 사이에 내 별명은 '신까탈'이다. 식당이든 술집이든 워낙 까다롭게 고르고, 쉽지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이런 내 까탈이 술자리에서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됐다. 친구들 또한 이해도 해주고 재밌어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이런 내 모습이 스스로 부끄러워지더라. 친구가 애써 고른 식당에 대해 함부로 맛없다고 하는 것도 사소하지만 배려심이 없는 행동이 아닌가. 사실 나같이 잘난 것도 없으면서, 까탈스러운 놈과 3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나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 같다. 작곡 - 싱어송라이터로서 - 과 노래, 글쓰기, 말하기 등 나를 표현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만든 노래가 좋아 수백 번 반복해서 듣기도 한다. 친구들의 모임에서도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비율이 높은 쪽은 아닌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나의 본성을 억누르고 억지로 어떤 스타일을 지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 소통이 빠지면 독선과 아집의 메아리 속에서 헤맬 가능성이 크다.


악기 연주든 스포츠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자세도 부자연스럽고, 제대로 된 동작이 나오지 않는다. 독선과 아집을 '어깨의 힘'에 비유할 수 있겠다. 혼자 잘나서 잘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어깨에 힘을 잔뜩 넣으면 조화롭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과거의 내 독선과 아집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내가 옳고 잘났던 게 아니라 단지 가족과 친구가 애정을 가지고 그걸 이해해 줬을 뿐인데 말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재능에 관련된 사자성어지만, 비단 재능뿐만 아니라 배려심이 뛰어난 사람은 무리 중에 있을 때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존재감이 드러나는 법이다.


가족과 친구라는 인간관계 속에서도 스스로 권위와 존재감을 내세우는 아버지, 엄마, 자식, 친구는 미숙한 인간형이요, 배려와 소통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이가 진정 성숙한 인간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쉽지 않지만, 이런 성숙을 향해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고 바뀌려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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