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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09. 2021

끝나지 않으면서 끝나는 인생

끝이라 생각하지만 끝이 아니고, 끝이 없을 거라 여기지만 끝이 난다

저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다면, 이 남자와 결혼만 할 수 있다면, 이번 시험에 합격만 한다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것 같지만 꼭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게 인생이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만 한다면, 원하던 회사에 취직만 한다면 몸도 마음도 편안한 삶의 연속일 거라 상상하지만 삶이 우리에게 주는 노고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끝나지 않는다. 가난이, 질병이, 가족이, 직장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지만 그 문제가 해결된다고 탄탄대로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먹고, 싸고, 치우고, 움직이고, 자야 한다. 여기에 쏟아붓는 시간만 해도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질병과 노화도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이며, 나와 다른 타인과 사회로부터 오는 여러 공격들로부터 방어 인생(겨울철에 먹는 그 방어 말고, 방어 운전할 때 그 방어)을 살아야 하는 것도 짊어져야 할 수고로움이다.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 게임처럼 끊임없는 난관들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삶의 고비들은 반복되고, 고비가 지나가면 끝이라 착각하지만 영화 <공범>에서의 김갑수 대사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죽음이라는 인생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 전까지는 끝없이 계속 반복된다. 먹고, 싸고, 치우고, 자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들 말이다. 


오류투성이인 우리가 저지르는 또 하나의 실수는 끝이 아닌데 끝이라 생각하고, 진정한 끝에 대해서는 별생각 없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이다. 고비 하나를 넘긴다고, 문제 하나를 해결한다고, 요행 하나를 만난다고 삶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불행에 빠지지 않는다. 병이 나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고, 부지런히 식단과 운동으로 몸을 관리해야 한다. 오늘 대청소를 했다고 해서 내일 먼지가 쌓이지 않는 게 아니다. 오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광란의 밤을 보낸다고 해서 내일 스트레스가 다시 생기지 말란 법은 없다. 


그래서, 이 끝없는 반복의 삶에서 살아남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그 방법밖에 없다. 어제 방을 청소했더라도 오늘 더러우면 또 청소기를 돌리면 된다. 내게 오는 노화와 질병을 지연시키기 위해 어제 걸었던 그 길을 오늘 또 걸으면 된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면 조회수가 20~30밖에 안 나왔던 그 글을 오늘 또 쓰면 된다. 끝을 보려 하지 말고 - 끝장을 내겠다는 그 말이 왠지 멋있게 들리지만 말이다 -, 끝이 없음을 인정하고 계속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글이란 게 있을까? 그런 건 없다고 믿는다. 지금 내 맘에 제일 드는 글은 있겠지. 


그러고 보니 진정한 끝(죽음) 앞에 설 때까지 뜀박질을 무한 반복하는 우리 생명의 탯줄, 심장의 행태를 보더라도 삶의 원리는 간단하다. 끝없는 반복인 것이다. '부지런히 반복하라, 끝없이 움직여라' 이런 교훈을 주는 게 아닐까.


반면 진정한 끝에 대해서는 오히려 거의 망각하고 지낸다. 이 끝은 자주 기억하고 되새기는 게 좋다. 우리가 죽는다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수많은 철학과 교훈과 예술이 발생한 게 아닌가. 




진정한 끝이 오기 전에는 끝이 없고, 한 번의 끝은 반드시 온다는 사실. 그러니 현실에서는 부지런하면서도, 깊은 마음속으로는 늘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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