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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17. 2021

복잡한 세상, 단순한 인간

통찰에서 오는 단순함, 무뇌에서 오는 단순함

손으로 밥을 먹는다. 끼니마다 매번 손으로 먹다 보니 뭔가 불편하다. 기름진 걸 먹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래서 숟가락을 만든다. 숟가락으로 먹다 보니 길이가 긴 것들은 먹기가 불편하다. 양 조절도 잘 안된다. 그래서 젓가락을 개발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니 편하긴 한데, 먹고 나면 이것들을 씻어야 한다. 그러니 또 설거지할 용기가 필요하다. 씻은 후 아무 데나 두자니 쥐도 다니고 해서 수저통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나(인간)는 숟가락, 젓가락, 수저통, 설거지통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조만간 수저통과 설거지통을 보관할 선반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살림살이가 늘어가는 과정을 자의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동물들은 몸뚱아리 하나와 먹이만 있으면 단출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삶의 살다 간다. 그러나 인간은 태생부터 그럴 수 없다. 이런 태생적 한계에다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치켜세우지만 욕구 앞에서는 무뇌충처럼 단순하다.


마트에 가면 사기로 계획했던 것 외에도 먹을 것들이 넘쳐난다. 몇 백 년 살 것도 아닌데, 1~2만 원이 아까워 사지 않는 건 왠지 옹졸하고 치사하게 느껴진다. 세일에 혹해서, 판촉 사원이 권하는 맛배기에 혹해서 묶음상품을 살 때는 냉장고 한 구석에서 전기세만 잡아먹는 재고가 될 것을 예상하지 못한다. 남들 다 쓰는 휴롬이나 다용도 믹서기를 나만 안 사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다. 휴롬이나 다용도 믹서는 상당한 부품으로 구성돼 있고, 그것들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은 당연히 안중에 없다.


이 여자가 좋다. 이 남자가 좋다. 같이 있고 싶은데, 자꾸 헤어지니 싫다. 그래서 결혼을 한다. 연예 때와는 다른 이 남자의 나쁜 습관(툭하면 가래침을 뱉는다든지)과, 이 남자의 멋진 외제차가 사실은 월세 살이 + 60개월 할부였다는 사실과 성격이 이상한 시누이와 폭발 직전까지 잔소리를 해대는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미처 예상치 못한다.


생각 없이 저지른 것들로 카드값은 월급을 초과한다. 지레짐작은 대부분의 경우 예상을 뛰어넘는다. 성급한 결혼으로 인생이 고달프다. '이러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평상시에, 욕구 앞에서 우리는 그다지 신중하지 못하다. 과장 좀 보태면 무뇌충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나의 살림살이가, 삶이 복잡해지고 꼬이는 건 이런 나(인간)의 본성, 습성 때문이다. 고민을 통한 통찰을 하지 않으면 온갖 쓰레기가 쌓인다. 필요해서 산 물건들, 필요해서 저장하고 모은 정보들, 필요해서 채운 욕구들이 쓰레기가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이 쓰레기들 속에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 가는 삶이 되고 만다.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


지 죽을 줄 모르고 마구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단순함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 본성이 그러하므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다. 반대로 복잡함을 초월한 단순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통찰이 필요하다. 관찰, 사색, 독서, 경험, 대화를 통한 통찰 말이다. 진리는 단순하다고 수많은 현인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내 살림살이가 복잡하다면, 내 휴대폰과 컴퓨터의 어플과 폴더들이 복잡하다면, 내 삶이 여러 문제들로 정신 사납다면 우선 조용히 돌아보자. 단순하게 만들어야 진리와 진실과 희망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진다.


지저분하고 정신없는 벤츠보다 군더더기 없는 포니가 더 아름답다. 넘치는 콘텐츠를 24시간 유지하기 위해서 오늘도 구글과 네이버의 서버 컴퓨터는 쉴 새 없이 돌아가면서 전기를 소비하고, 소음을 유발하고, 공간을 차지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백업용 서버도 비슷한 에너지와 인력을 잡아먹으며 돌고 돈다. 끊임없이 확장되는 인류의 삶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예는 환경오염, 기후변화, 우울증 등 수없이 많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와 멜론과 마켓컬리와... 구독하라는 건 얼마나 많은지. 우린 이미 콘텐츠에 짓눌려 살고 있기도 하다. 내가 스스로 골라서 즐길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래서 단순해지기 위한 통찰이 더 필요하다.


곡의 엔딩 부분 베이스라인이 안 떠올라 시간을 질질 끌며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문제로 가족에게 전화가 온다. 마침 퇴근한 아내는 갑질하는 매니저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짜증을 낸다. 큰 아들을 통해 막내가 겁도 없이 카드빚을 몇 천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아이구, 몸뚱아리 하나 가지고, 무심코 태어난 내 인생이 왜 이리 복잡해졌나요??'


내 생각과 마음(영혼)만은 세상과 타인에게 휩쓸리거나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자꾸 단순해지자. 살림살이도, 생각도, 씀씀이도.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튼튼한 지팡이 하나가 바로 단순함이다. 통찰에서 오는 단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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