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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Feb 03. 2021

나는 생각한다 고로 망한다

생각하기 vs 행동하기

'생각이 먼저냐, 행동이 먼저냐' 하는 문제를 곰곰이 따져 보면 그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과 비슷하다. '영혼이 중한가, 육체가 중한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랄 수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매우 회의적이고 사색적인 사람이었다. 의미가 없는 삶이나 행동은 무의미하므로 삶 자체와 삶에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고 무던히 용을 쓰며 생각을 많이 했다.


최근 즐겨 찾는 유튜버 신사임당은 똑똑한 사람이 실행력이 낮고 성공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생각은 행동보다 쉽게 앞선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생각만으로는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영생을 바라고 인류의 기원을 찾아 머나먼 우주로 떠났던 웨이랜드는 뜻밖에 비참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다. 성경에도 비슷한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도서 12:12)' 인간 지혜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다.


생각이 행동보다 우선하고, 영혼이 육체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은 적어도 현생에서는 그다지 지혜로운 결론이 아니다. 생각 없이 한 행동 때문에 삶이 극적으로 좋아지기도 하고,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한 육체 때문에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지속적인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태어났다는 사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태어난 후에야 비로소 인문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났다는 것. 즉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것들은 '의미' 이전에 먼저 '존재'하는 것으로서 '존재' 자체가 이미 자연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성경 속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을 원망하며 행동하지 않은 것은 '생각의 부작용'에 대한 좋은 예이다. 이 '한 달란트'는 내게 나이일 수 있고, 재능, 시간, 돈일 수 있다. 남들보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이, 남들보다 적다고 믿는 재능, 시간, 돈 말이다. 한 달란트를 굴려서 불리는 '행동'을 하지 않고, 겨우 한 달란트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그 어리석고 앞서가는 '생각' 때문에 그 종은 결국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삶 속에서 폭망한다.


영화 <곡성>에서 종구(곽도원)가 딸의 신병에 대해 일광(황정민)과 무명(천우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믿음의 주체가 흔들린다. 사이비 교주들은 이런 논리를 악용해서 광신도와 같은 추종세력을 양산하지만 말이다.


어릴 적, 방학 초입에 세우는 생활계획표 때문에 폭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타이트하게 짠 계획표 - 생각으로는 당연히 그렇게 매일매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가 작심삼일에 그치면서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오히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돼서 방학 기간 전체를 별 성과 없이 보내버리게 된다.


작가들이나 우등생들이 흔히 하는 말 '엉덩이가 글을 쓴다, 공부를 한다'는 말도 결국 무심한 행동이 열매를 가져다준다는 말이다.


한 3일 굶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인간은 왜 먹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까. 거식증에 걸리지 않고서야 그러지 못할 것이다. 똥이 마렵고, 오줌이 누고 싶어 죽겠는데, 왜 배설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는가? 그러지 않는다. 


심장은 왜 뛰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먼저 묻지 않는다.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심장이 왜 뛰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은 중요하다. 문명의 기초는 과학이고, 과학의 기초 중 일부는 수학, 물리학이다. 이런 것들은 생각과 연구의 산물이다. 인문학적으로도 사색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나는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생각의 해악에 대해서, 행동의 숭고함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행동은, 육체를 통한 행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숭고하고 위대하다. 행동은 삶의 많은 기회들을 숨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이미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해선 안된다. '걷는다'는 생각은 '걷는' 행동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생각은 과거 경험에 기반한 '가상'이지만 걷는 '행동'은 육체와 시간이 결합한 현실이자 현재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똑같은 장소를 걸어도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다. 그 장소도 미세하게 달라져 있거니와 날씨와 내 컨디션도 당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과 행동, 영혼과 육체는 아버지와 자식 같은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할 친구들이다. 


악화된 부부관계 회복을 위해 관련 서적 10권을 읽느라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책은 우선 1권만 읽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 아내와 드라마를 주제로 수다를 떨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쓰레기를 비우는 편이 행동의 숭고함을 아는 삶의 태도라 하겠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천지를 창조한 후에 심히 좋아하신 걸 보니 신도 역시 행동주의자인가 보다.




생각이 행동을 삼키려 할 때, 생각이 행동을 깔보거나 비웃을  때, 먼저 뛰고 보는 심장과 먼저 행동하고 보는 자연의 섭리를 곱씹으며 몸을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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