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와 인종차별의 역사
브루클린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모습은 인간이 역사상 이룩한 가장 높은 위치의 작품을 보는 것과 같다. 뉴요커 친구와 그곳을 걸으며, 영화 산업에 대한 토론을 즐기며 나왔던 이야기이다.
A movie without Manhattan is doomed to fail.
현재 뉴욕에 10년 이상 거주하는 친구가 맨해튼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다. 맨해튼이 배경으로 나오지 않는 영화는 망한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무런 부정을 할 수 없었다. 왠지 내가 좋아했던 영화는 다 맨해튼이 등장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최근 재미교포 출신 영화감독이 제작한 영화들이 꽤나 흥행을 거두며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물론 내 친구도 그 교포의 일원에 속한다. 짧게나마 고등학교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던 나와 달리, 한평생을 미국에서 온갖 차별을 마주하며 살았던 교포들에겐 그 인정이 얼마나 큰 가치였던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다 맨해튼이 나왔었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백인 중심 영화산업에서 나온 부산물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 영화들의 작품성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맨해튼이 나오는 영화는 <Meet Joe Black, 조블랙의 사랑>, <Avergers, 어벤저스>, <Rainyday in New York, 레이니데이인뉴욕>, <The devils wear Prada,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Intern, 인턴>, <Inception, 인셉션>, <I am Legend, 나는 전설이다>, <The breakfast in Tiffany's,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영화 외에도 수없이 많은 영화가 맨해튼을 배경으로 촬영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뉴욕 맨해튼은 세계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장소이다. '도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너는 어떤 타입의 여행을 좋아해?"라고 물으면 보통 크게 두 가지의 답변으로 나뉜다. 바로 '도시형 여행'과 '자연형 여행'이다. 본인이 도시형 여행 가라면 뉴욕은 가장 방문하고 싶은 도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로망을 실현시키기에 수없이 많은 요소를 갖춘 곳인 바로 뉴욕이다.
다만 영화산업 관점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소위 '백인들의 파티'라고 불리는 영화 시상식이다. #OscarsSoWhite 라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국내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비영어권 최초 수상작임은 뉴스에서 한 번쯤 접해보았을 것이다.
그럼 아카데미 시상식의 연대기적 차별의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자.
[아카데미 시상식 인종차별 연대기 평론]
1920s~1940s
- 1929: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지만, 당시에 인종차별 문제가 거의 언급되지 않음. 역사적 패권이 미국에 있었으며, 영화 산업 또한 백인 주도였기 때문.
- 1939: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Hattie McDaniel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최초 흑인 수상자가 되었지만, 그녀는 백인들로부터 격리된 자리에서 시상식을 관람함.
1950s-1960s
- 1954: Dorothy Dandridge는 영화 <카르멘 존스>로 아카데미 최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흑인 여배우가 됨.
- 1963: Sidney Poitier는 영화 <들판의 백합>으로 아카데미 최초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흑인이 되었음.
1970s-1980s
- 1973: Marlon Brando는 영화 <대부>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나, 아메리카 원주민 처우에 항의하기 위해 수상을 거부함.
- 1989: Spike Lee는 영화 <Do the Right Thing>에서 인종 문제를 다루었으나 아카데미 시상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지 못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의 인종적 편항성에 대해서 논란을 일으킴.
1990s
- 1992: 우피 골드퍼그는 영화 <Ghost>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두 번째로 수상한 흑인 여배우가 됨.
2000s
- 2002: 할리 베리는 영화 <Monster's Ball>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이 됨.
- 2004: 제이미 폭스가 영화 <레이>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함.
2010s
- 2014: 스티븐 맥퀸의 영화 <12 Years a Slave> 작품이 흑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최초 작품상을 수상함.
- 2015: #OsacarsSoWhite 캠페인 시작됨.
- 2017: 베리 젠킨스의 영화 <Moonlight>가 흑인 감독 작품 두 번째로 작품상을 수상함
2020s
- 2020: 봉준호 감독 영화 <Parasite>가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함.
아카데미 시상식의 인종차별 연대기를 보시다시피, 서방의 역사적 패권 차지로 인해 영화산업 또한 백인위주의 시상이 진행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현상이 자연스러운 역사적 흐름이라고 받아들인다. 만약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동방으로 가져왔다면, 영화산업이 동양인 위주의 시상식으로 개편되며 발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카데미 시상식은 현재 인종적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수상에 국내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따름이다. 다시 맨해튼 이야기로 돌아와, 이 역사적 흐름을 보면 맨해튼이 대부분의 흥행 영화 배경이 되었던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이 과거 1차 산업혁명을 일으켜 동방 패권을 가져왔다면, "베이징(북경)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망한다"라는 말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맨해튼을 거닐다 보면 종종 촬영 현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5번가, 센트럴파크, 월가, 브루클린 브리지, 타임스퀘어 등 영화감독이면 한 번쯤 촬영하고 싶은 장소가 질비해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왠지 뉴요커라 하면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맨해튼의 저연봉자의 기준이 연봉 1억에 달한다. 그만큼 맨해튼에서의 취업은 전 세계인들이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성공이라는 정의 내리기 어려운 주관적 성취가 뉴욕에서는 쉽게 일어난다. 뉴요커의 삶을 누구나 동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감독은 작품 속에서 성공한 삶을 비추거나, 혹은 철저하게 성공만을 좇는 주인공의 모습을 연출할 때 적극적으로 맨해튼을 소재로 사용한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브루클린 브리지 옆을 아침마다 조깅하는 꿈을 꾸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잠시나마 영화로 내 어릴 적 꿈을 실현시키곤 할 뿐이다.
Photo by Bam